혼수家電 16평 전세방에도 49인치 TV "큰 걸로 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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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2면

오는 12월 초 결혼하는 예비신부 金모(27)씨. 혼수품으로 5백여만원어치의 가전제품을 장만했다.

'49인치 프로젝션TV, DVD플레이어·스피커·앰프 등으로 구성된 홈시어터, 6백30ℓ급 양문형 냉장고, 오븐형 가스레인지'.

목록만 보면 중대형 아파트에 어울릴 법하지만 김씨가 신혼살림을 차릴 곳은 16평짜리 아파트다. 경기도 안양 산본에 전세를 얻었다. 그런데도 혼수가전만큼은 최고급으로 했다.

金씨는 "자질구레한 가전제품을 과감히 빼 가짓수를 크게 줄인 대신 고급·대형으로 했다"며 "거실 면적에 비해 TV 등이 조금 크긴 하지만 원하는 것을 샀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세탁기의 경우 지금 쓰고 있는 것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약혼자와 합의했다. 전자레인지·청소기·밥솥 등은 결혼 후 생각하기로 했다. 집들이 때 친구들이 사오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다.

가전제품의 고급화·대형화 바람이 거세지면서 혼수가전의 세대교체가 뚜렷하게 이뤄지고 있다. TV는 최소 29인치 완전평면 디지털TV가 기본이다. 냉장고는 양문형, 세탁기는 드럼형이 혼수가전의 대세가 됐다.

가전양판점 테크노마트 내 찬우플라자의 김용호 부장은 "다른 혼수품은 줄이더라도 가전만은 고급·대형 제품을 구입하려는 게 요즘 신세대 예비부부들의 일반적 경향"이라고 말했다.

◇혼수가전 세대교체=인터넷쇼핑몰 인터파크가 올 가을에 결혼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든 응답자가 홈시어터를 구입하겠다고 했다. 필수 가전제품으로 꼽히는 냉장고·세탁기도 모두 양문형과 드럼형을 사겠다고 응답했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양문형 냉장고와 드럼형 세탁기는 한대 가격이 1백만원 앞팎으로 일반형에 비해 두배 이상 비싼 데도 대부분이 구매할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고급 영상가전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TV는 29인치 이상을 선호하고, 신혼집이 20평형 내외에 불과한데도 3백만원이 넘는 42인치 제품을 찾는 예비부부도 많다는 것이다.

유통업체들이 TV·냉장고 등을 세트로 묶어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은 올들어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고급 제품을 중심으로 '튀는 가전'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패키지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이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신세대 부부들은 남들과 다른 제품을 구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획일적인 제품으로 구성된 패키지는 이젠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전자레인지·밥솥·청소기·다리미·토스터기·커피메이커·조명 스탠드·포터블 카세트·가습기 등은 혼수 목록에서 빠지고 있다.

10월 결혼하는 예비신부 金모(29)씨는 "청소기·다리미 등 10만원 안팎의 전자제품들은 친구들에게 집들이 선물로 부탁했다"며 "먼저 결혼한 친구들도 소형 가전제품을 친구들에게 분담시키고 혼수용은 비싸고 큰 것만 장만했다"고 말했다. 이에 전자양판점들은 이들 소형 가전제품을 '집들이용 제안상품'으로 따로 모아놓고 판매하는 등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보통신기기도 혼수가전으로 인기=휴대전화·노트북 컴퓨터·개인휴대단말기(PDA) 등 정보통신 관련 상품을 혼수로 장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예비신부 박정화(29)씨는 "컴퓨터가 필요한 데다 LCD모니터가 소형 TV 역할을 하기 때문에 1백50여만원을 들여 컴퓨터를 혼수품으로 장만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부 발빠른 전자제품 유통점들은 개학 시즌에 학생들을 겨냥해 주로 벌이는 정보통신 관련 제품 판촉행사를 혼수품에도 적용하는 등 달라진 세태에 대응하고 있다.

◇달아오르는 혼수가전 판촉전=백화점들은 진행 중인 브랜드 세일과 다음달 3일 시작하는 정기 바겐세일에서 '혼수가전 특설매장'을 만들어 판촉전을 벌인다. 인터넷쇼핑몰·TV홈쇼핑은 구입금액에 따라 일정액을 적립금으로 되돌려주는 방법으로 할인행사에 나선다.

롯데닷컴은 이달 말까지 국민카드로 결제한 고객에게 구입금액에 따라 3만∼30만원의 적립금을 준다. 인터파크는 고객의 요구에 맞게 패키지 상품을 구성해 총금액의 2%를 할인해준다.

테크노마트는 다음달 20일까지 '가을 혼수 대축제'행사를 벌이면서 휴대전화·노트북은 15∼20%, 디지털 카메라·게임기·PDA·컴퓨터 주변기기 등은 10∼20% 할인판매한다.

하이마트는 11월 말까지 계속되는 혼수행사에서 PC와 노트북을 사면 사은품을 준다.

양선희·김준현 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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