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100년 맞는 노벨상>후보 추천권 확보가 우선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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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7면

"과학자들이 자긍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과학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과학분야의 노벨상을 많이 탄 영국·스웨덴 등 선진국들은 과학자들이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습니다."(서울대 생명공학부 김선영 교수)

"일본의 과학자들이나 정부 관료들은 스웨덴에서 개최하는 심포지엄·파티 등에서 자주 보며, 특정 과학자의 경우 연구 업적도 잘 압니다."(우리나라 학자가 만난 스웨덴 노벨재단 관계자)

"한국에는 노벨재단이 인정하는 세계 1백위 이내의 교육·연구기관이 없어 노벨상 후보 추천권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포항공대 임경순 교수)

우리나라가 과학분야의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주요 이유를 읽을 수 있는 말들이다. 후보 추천권이 제대로 있는 것도 아니고, 해외에 우리나라의 연구 업적을 잘 알리지도 않으면서 노벨상을 타려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과학자를 홀대까지 하는 사회다. 노벨상을 타기 어려운 조건을 골라서 갖고 있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후보 추천권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우수한 교육·연구기관을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벨재단은 후보 추천권을 세계 1백대 교육·연구기관, 노벨상 수상자, 저명한 과학자 개인 등에 주고 있다. 물리학상·화학상·생리의학상 등 부문별로 1천명에게 후보 추천을 의뢰한다.

지금까지 국내 기관이 추천권을 받은 것은 없으며, 개인으로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인규 원장이 2002년도 물리학상 후보자 10명을 추천한 것이 확인됐을 뿐이다.

우리나라 과학계의 국제 수준은 지표상으로는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 이공계의 수준을 가늠하는 주요 잣대인 국제과학논문 색인(SCI)에 오른 논문수로는 지난해 국가 순위 14위, 대학의 경우 서울대가 세계 40위로 1백위 안에 올라 있다.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별 올 과학기술경쟁력 평가에서는 세계 10위다.

그러나 이런 지표만으로는 노벨상을 타기에 아직 역부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벨재단이 질적인 수준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홍창선 원장은 "경제규모가 늘듯 과학기술분야도 양적으로만 급속하게 팽창했다. 질까지 갖추기에는 우리나라의 근·현대 과학기술 역사가 너무 짧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앞으로 교육과정은 주입식 위주에서 창조성 개발 쪽으로, 모방 연구보다는 독창적인 장·단기 연구를 병행해야 노벨상을 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인규 원장은 "노벨상 탈 만한 사람을 골라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 하며,연구 성과를 해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스웨덴 대사관에 과학 담당 과학관 한 명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 연구개발비 중 기초과학 육성 예산 비율이 적은 것도 문제다. 한국은 12.6%, 미국은 16.3%, 독일은 21.2%를 배정하고 있다.

박방주 기자

b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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