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에 따라 수 세는 방법도 가지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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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4면

일·십·백·천·만 식으로 단위가 커지는 10진법은 우리 생활에 가장 널리 퍼져 있다. 단지 이렇게 수를 세는 것뿐 아니라 '금 10돈=1냥'하는 식으로 10이 되면 단위가 바뀌는 것 모두가 10진법에 따른 것이다. 크게 보면 야구 선수의 타율을 따지는 '할·푼·리' 역시 10진법의 산물이다.

10진법이 손가락이 열개라는 사실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다. 손가락과 수의 연관은 우리말에서도 나타나는데, '다섯'과 '닫힌다', '열'과 '열린다'는 발음의 유사성이 그것이다. 한 손으로 꼽아가며 수를 셀 때 다섯이면 주먹이 쥐어지고(손바닥이 닫히고), 열이 되면 손이 열리기에 '다섯'과 '열'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10진법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알다시피 컴퓨터는 2진법을 쓴다. 12진법도 있다. 연필 한 다스가 12자루이고, 영국의 옛 화폐 단위에서 1실링은 12펜스였다. 지금도 쓰이는 서구 길이의 단위 1피트는 12인치다. 이는 1년이 12달이라는 것의 영향인 듯하다.

이런 12진법적인 생각은 『걸리버 여행기』에도 나온다. 걸리버가 소인국에 갔을 때 한끼 식사로 1천7백28명분을 대접받았다는 대목이 있다. 이는 소인국의 1피트가 걸리버의 1인치에 해당한다는 상상, 즉 걸리버의 키가 소인의 12배라는 12진법적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먹는 양은 몸의 부피에 비례할 것이므로, 소인보다 12배 큰 걸리버는 음식을 12의 세제곱인 1천7백28배 먹을 것이라는 게 작가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마야 문명은 20진법을 썼다. 우리나라에서 담배 1갑=20개비, 오징어 1축=20마리, 한약 1재=20첩, 조기 1두름=20마리 하는 것도 옛날 20진법이 쓰였던 흔적일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는 60진법을 발전시켰다. 관측에 의해 지구의 공전 주기가 3백60일 정도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바빌로니아인들은 태양의 모습인 원을 3백60으로 생각하고 3백60을 6등분한 60을 단위로 택한 것이다. 지금도 쓰이는 60진법의 예로는 1시간=60분, 1분=60초, 각도 1도=60분 등을 들 수 있다.

kpark@math.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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