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거미줄 감시망 … 북 돈줄 손바닥 보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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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은행과 관계가 끊기면 세계의 화폐인 달러를 거래하지 못한다. 북한과 관계를 끊을 거냐, 아니면 미국 제재를 받고 은행 문을 닫을 거냐.”

미국이 추진하는 대북 금융제재는 세계의 모든 금융회사에 미국과 북한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걸 요구할 수 있는 미국의 힘은 달러 송금 과정에 잘 드러난다. 한국 외환은행이 아프리카 은행에 달러화를 송금하는 과정을 보자. 우선 외환은행은 미국 A은행에 금액·송금자 등 금융정보를 메신저로 날린다. 이때 쓰이는 메신저가 SWIFT(스위프트)다. 소문자로는 ‘재빠르다’는 뜻이지만 대문자로 쓰면 ‘세계 은행 간 금융전자통신기구(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다. 전 세계 209개국, 9000여 개 금융회사와 기업을 거미줄처럼 엮은 비영리 금융통신망이다.

외환은행이 A은행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두 은행이 환거래(코레스)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은행도 미국 B은행과 환거래 계약을 맺고 있다. A은행은 외환은행의 메시지대로 B은행에 달러를 송금한다. A와 B은행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에 계좌를 두고 정산을 하게 된다. 결국 모든 달러 거래는 미국의 은행과 Fed의 손바닥 위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계좌 동결은 엄밀히 말해 미국 땅에 있는 은행과 Fed(유럽에선 유럽 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의 송금 루트를 동결한다는 의미다. 현찰로 빼내더라도 다른 은행에 입금하기 어렵다. 액수가 큰 현찰 입금은 자금세탁으로 의심받기 때문이다.


◆과잉반응이 제재 효과 키워=유로화를 송금할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유럽 은행과 환거래 계약을 맺지 못한 북한 은행은 중국 등 해외의 은행을 경유해야 한다. 유로화 등 다른 통화의 송금인 경우에는 미국을 거치지 않으므로 그동안 미 정부로서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외국 은행까지 보복하는 방안이 실행되면 북한은 세계의 웬만한 금융망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미국에 협조를 거부해 미국 은행과 거래가 끊긴 은행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미국 내 자산이 자동으로 동결된다. 이런 은행에선 예금 인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신용이 급격히 떨어지는 데다 해외 송금이 안 되는 은행에 돈을 예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은행들도 거래를 꺼린다. 고립무원에 빠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북한과의 거래 전체를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수수료 몇 푼 포기하는 것이 위험한 거래에 연루돼 제재를 받는 것보다 백번 낫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 은행 협조 여부 주목=최대 관심사는 북한을 감싸는 중국의 협조 여부다. 중국 은행들은 자산 규모나 미국과의 거래 규모에서 무시하지 못할 덩치를 자랑한다. 미·중 은행 간 거래가 끊기면 미국 은행도 손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체로 중국 은행들이 제재에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익명을 원한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주자로 성장한 중국 대형 은행들은 국제 금융시장의 영향력과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란 제재에 중국 은행들이 동참하고 있는 게 좋은 예”라고 말했다. 중국 은행들도 SWIFT와 연동해 위험 거래를 실시간으로 추려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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