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창간37돌]대선주자 릴레이인터뷰-이회창 : "검찰 중립화 조치 6개월내 단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회창 후보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에 "사진 잘 나오게 하려고 살짝 화장했는데 보기 괜찮으냐"라고 하거나 대선 실패시 거취를 묻는 질문에 "실패할 경우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넘겼다.

◇정치 분야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정치 개혁을 전면에 내세울 만큼 기성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염증과 실망이 큽니다. 李후보의 정치 개혁 구상은 뭡니까.

"우선 권력 집중을 막는 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대통령이 여당을 통제해 국회를 장악해 온 게 우리 정치 모습이었습니다. 당권·대권을 분리해 이를 깨겠습니다. 대통령과 총리의 책임·역할 분담도 이뤄져야 합니다. 둘째, 정경유착이나 돈의 정치를 청산해야 합니다. 셋째, 검찰·경찰·국가정보원·국세청 등 권력기관들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야 합니다."

-정경유착을 거론했는데 재벌 총수나 그 아들이 대통령으로 나서는 건 어떻게 봅니까.

"대답하면 모씨에 대한 공격처럼 될텐데…. 결국 개인의 결단과 자질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벌 아들이라도 절대로 정치와 경제가 돈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확고한 결단을 갖고 국민이 납득할 표시를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많은 사람이 걱정하겠지요."

-李후보는 '반DJ 정서'에 의존할 뿐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여론조사상 지지도가 답보 상태에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런 지적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야당이 된 뒤 원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연 반DJ 정서에 따른 반사이익만으로 그렇게 될 수 있었겠는가 반문하고 싶군요. 중요한 것은 12월 국민은 우리 당이 내세우는 대통령후보를 선택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내가 내 이름을 말하긴 뭣하지만. 허허."

-신보도지침·대통령 탄핵 발언 등은 오만한 것 아닙니까.

"그러게 말이에요. 제1당으로 오만한 자세로 비춰지지 않도록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1당으로서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권력의 잘못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렵습니다."

-집권하면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집권 후 현 정권의 비리가 추가로 드러난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사실 현 정권 임기 내에 모든 비리에 대한 조사가 끝났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제 스스론 이미 다짐했듯 정치적 이유로 형평성에 반해 어느 누구를 응징하거나 보복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권력기관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비리를 조사·처리하는 것과 정치 보복은 구별돼야 할 것입니다."

-자제들의 병역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후보를 사퇴한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경우든 비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면요.

"공정하고 성의있는 수사라면 진실은 이미 밝혀졌을 것입니다. 진실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통일·외교·안보 분야

-최근 평화정책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집권하면 햇볕정책을 포기하실 겁니까.

"남북 문제에서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적대적 대결 구도 해소가 우선과제입니다. 햇볕정책은 이 부분을 슬쩍 피해가면서 교류·협력을 우선으로 내세웠습니다. 평화정책의 골자는 평화 구축·긴장 완화와 교류·협력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국군 포로와 납북자 문제, 이산가족 상봉의 제도화 문제 등을 정면으로 제기할 겁니다. 최근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일본에는 납치 문제를 사과하면서도 같은 민족인 우리에겐 사과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한항공기 폭파, 아웅산 테러에 대해 사과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李후보 부친에 대해 비난하고 있는 국면입니다. 그런데 집권한 뒤 북한과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보니까 좀 심하더라고요, 허허. 북한이 미국에 대해 그렇게 비난했지만 지금은 화해 제스처를 보내지 않습니까. 그때가 되면 북한이 대화에 응할 겁니다."

◇경제 분야

-재벌 개혁을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재벌이 진짜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탈바꿈하도록 개혁해야 합니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지배구조의 개선은 물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부실 재벌에 대한 퇴출이 시장원리에 따라 엄격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이 분명 가려지고 물어지는 시스템이 돼야 합니다. 상속과 증여의 문제도 법에 의해 엄정하게 다뤄져야 하고,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해 사금고화하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실 재벌의 퇴출이 시장원리에 따라야 한다고 했지만 6·13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은 하이닉스반도체의 독자 생존을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정치권이 어떤 방향이라고 딱 찍어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하이닉스반도체 문제는 당시 마이크론 해외 매각 조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던 것으로 압니다."

-공무원 노조에 대한 정부안을 어떻게 봅니까.

"공무원인 만큼 단체행동권을 제한한 방향은 잘 됐다고 봅니다. 또 노조라는 명칭을 쓰면 노동조합법·근로기준법이 그대로 적용되는 만큼 다른 명칭을 쓰자는 제안도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재산세 인상·양도세 인하·신도시 건설 등 주택정책이 난무하는데….

"중요한 것은 정부가 하는 일에 전망이 서고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 정권 들어 주택정책을 36번씩이나 고쳤다는데 누가 믿겠습니까."

◇사회 분야

-고교 평준화 정책에 대한 의견이 엇갈립니다.

"문제가 있다고 지금 바로 뜯어고칠 순 없습니다. 평준화 골격은 지키되 큰 폭의 보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육의 질, 특히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중·장기적으론 공립과 사립의 방향을 별도로 잡는 게 옳다고 봅니다."

-내년 6월이면 건강보험 재정 통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요.

"통합의 원칙에는 합의했습니다. 크게, 또 멀리는 통합이 여러 면에서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득 파악이 정확히 돼야 하고, 파악된 소득 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통합의 전제조건입니다. 통합 시행 여부는 그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선 때마다 검찰 개혁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지만 오히려 검찰의 위상은 자꾸 떨어져가는 것 같습니다.

"집권한다면 6개월 이내에 국민과 야당이 신뢰하는 강도 높은 검찰 중립화 조치를 단행하겠습니다. 청와대가 검찰 인사에 일절 개입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도입하겠습니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특별검사제를 도입하겠습니다."

◇문화·여성 분야

-영화·연극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스크린쿼터제는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까.

"지금보다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국민 혈세를 쓰는 것인 만큼 낭비되는 부분은 과감히 수술할 것입니다. 스크린쿼터제는 최근 일시적으로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당장 폐지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계에선 오래 전부터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 상징적·문화적 충격이 있는 만큼 당장은 문제점을 고치고, 완전 폐지까지는 시간을 갖고 해도 될 것입니다."

정리=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중앙일보는 창간 37주년을 맞아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노무현(盧武鉉·민주당)·정몽준(鄭夢準·무소속)·권영길(權永吉·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와의 연쇄 인터뷰를 싣는다. 인터뷰는 이번 대선구도가 다자구도로 형성된 뒤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인터뷰 게재 순서는 국회 의석수와 현재 여론조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 것이다. 중앙일보는 흑색선전과 인신비방 위주의 선거운동에서 벗어나 정책경쟁으로 유도하는 차원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분야의 중견 기자들을 참여시켜 정책분야에 대한 후보들의 견해를 검증하는 그룹 인터뷰 형식을 시도했다. 중앙일보는 앞으로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을 보다 심도있게 분석·검증해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을 약속드린다. 이회창 후보와의 집단 인터뷰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1시간10분 동안 이뤄졌다.

<인터뷰 팀>

김두우 정치부장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오병상 대중문화팀장

이규연 사건사회부 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