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우 감독에게 하고싶은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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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952년 서울생, 본명 장만철 ▶69년 혼자 여행 중 싸운 게 발단이 돼 서울고 3년 중퇴▶71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입학 후 탈춤반에서 활동, 시위 주도하다 잡혀 군 입대▶76년 잡지 기자로 일하다 보일러 기사 자격증 얻어 비닐공장서 근무▶80년 대학 복학후 연극 평론 활동,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으로 6개월 징역형 ▶81년 이장호 감독의 '그들도 태양을 쏘았다' 시나리오 쓰고 연출부로 활동▶85년 MBC TV 베스트셀러 극장서 15편의 드라마 극본 작업, 선우완과 공동 연출로 첫 영화 '서울 예수'제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을 보면서 문득 장선우 감독의 이력서를 들춰 보고 싶었다. 善宇, 세상(우주)을 착하게 만들고 싶다는 뜻일까. 예명(藝名)처럼 그의 영화는 '통이 크다'. '성냥팔이…'가 1백10억원이라는 한국영화사상 최다 비용이 들었다 해서 하는 말만은 아니다. 가상과 현실, 장자(莊子)와 금강경(金剛經)…. 보통의 영화가 엄두도 못내는 화두(話頭)를 그는 태연작약,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대실패였다. 컴퓨터 게임의 액션을 옮겨 놓은 듯한 화면에 두 시간이나 눈과 귀를 맡기고 있자니 이건 '고문'에 가까웠다. 한때 한국영화의 새물결(뉴웨이브)을 주도할 감독으로 주목받았던 그가 도대체 왜, 언제, 어떻게해서 길을 잃어버린 것일까.

간략한 삶의 궤적이 보여주듯 그는 시대와 몸을 부비며 마찰하길 꺼리지 않는 청춘을 보냈다. 찬란하진 않았으되 나태하거나 도피하지 않은 젊음이었다. 영화도 그와 같아서 작품을 낼 때마다 그는 늘 '문제적' 감독이었다. '화엄경'(93년)이나 광주항쟁을 다룬 '꽃잎'(96년)이 한국 영화의 '그릇'을 키우려는 시도였다면, '거짓말'(99년)이나 '나쁜 영화'(97년)는 성(性)에 대한 한국 사회의 알량한 도덕과 이중성에 야유를 보내려는 몸짓으로 읽혔다.

'이곳을 넘지 마시요'라는 팻말을 얌전히 따르기보다 무시하고 딴죽 걸고 이죽거리는 그의 태도는 한국 감독으로는 독보적일 만큼 소중하고 존중할 만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너무 일찍 '영화'를 내던져 버렸다. 이전에도 징후가 보였지만 '나쁜 영화'가 변곡점이었던 것 같다. '정해진 시나리오 없음, 정해진 연출 없음, 정해진 배우 없음'이라는 자막으로 시작했던 이 영화처럼 이후 장감독의 영화는 어떤 틀과 형식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 같다.

장감독은 시인 유치환이 "참된 시는 더 이상 시가 아니어도 좋다"라고 했을 때의 그 형식의 초탈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영화를 초월하려기보다 영화라는 저잣거리에서 좀더 몸을 굴리는 게 필요하다. 겸손한 자세로 영화에 임할 때, 그가 염원하는 '순수 영화'는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리라.

장감독은 도사(道士)가 되고 싶은 걸까? 그러나 도사는 자칭(自稱)하는 게 아니다. 도사는 자신이 도사라는 걸 인식하지 조차 못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불평하지도 않으며 듣는 이와 말하는 이가 한몸이 돼, 누가 듣고 말하는지 분간이 안 되는 경지로 알고 있다. 그러니 제발 다시 영화로, 초발심(初發心)으로 돌아오라.

더불어 우주라는 큰 이야기에서 연역하려 들지 말고, 작은 이야기로부터 귀납하기를 당부한다.

ley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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