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印度의 힌두·이슬람 갈등: 종교분쟁 끊이지 않는'종교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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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10일 인도 동북지역 비하르 주에서 열차 탈선사고로 1백여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철교 이음판 일부를 누군가 제거해 일부 차량이 강물로 떨어진 대형 사고였다. 2월 말엔 다른 지역에서 열차 방화사건으로 수십 명이 죽기도 했다. 인도에서 늘 콩나물 시루 같은 열차는 대형 테러의 단골 표적이다. 도대체 누가,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가.

지난 여름 인도를 찾았을 때 현지인 가이드가 "바라나시 근처에선 기차를 타지 말라"고 충고하던 일이 생각났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종교적 갈등이 간혹 철도 사고를 위장한 테러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바라나시는 힌두의 최고 성지로 '어머니 강' 갠지스에 몸을 담그고 목욕하기 위해 힌두교도들이 몰려드는 장소로 유명하다. 바라나시는 열차사고가 난 현장과 멀지 않으며, 사고 열차 역시 바라나시로 접근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열차 대신 승용차를 빌려 이슬람 세력이 강한 도시인 럭나우에서 힌두교 최고 성지인 '바라나시'까지 하루 종일 달렸다. 3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古都) 바라나시는 사원의 도시다. 힌두사원이 수천·수백 곳, 그 사이를 비집고 이슬람 사원이 틈틈이 자리잡고 있다.

여러 면에서 두 종교는 대조적이다. 가장 큰 차이는 힌두교가 수백·수천의 신을 가진 다신교라면, 이슬람교는 알라만이 존재하는 일신교다. 힌두의 신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처럼 육신과 성정을 갖고 있지만, 알라는 권능과 추상적인 인격만 가진다.

그래서 힌두의 사원에는 코끼리 머리나 원숭이 얼굴을 가진 신은 물론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는 온갖 형상이 난무한다. 코끼리신 '가네샤'는 흔히 부(富)를 상징하며, 원숭이신 '하누야마'는 힘을 상징하는 등 형상마다 상징적 의미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지역에 따라, 상황에 따라 기도하는 대상도 다르다.

하지만 하얀 색깔로 통일된 이슬람 사원(모스크)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곤 형이상학적인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기하학적 문양뿐이다.

기도하는 양식도 다르다. 힌두교에서는 신도들이 꽃과 음식을 접시 가득 들고와 사제들에게 건네거나 제단 위에 올려 놓는다. 사제들은 온갖 제물을 가득 쌓아놓은 제단 옆에 앉아서 제물접시를 받아 제단에 던지고는 금방 다시 제물의 일부를 떼어 되돌려주는 단순작업을 되풀이한다. 제단 주위의 힌두교도들은 계속 머리를 조아리고 중얼거린다. 사원은 곧 쉼터이자 장터다.

반면 이슬람 사원을 찾은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그저 메카를 향해 앉았다가 일어서면서 낮은 목소리로 기도할 뿐이다. 외부인들은 출입할 수 없는 선방(禪房)처럼 차분하고 경건하다.

그러나 인도인들의 삶은 하나였다. 그들은 무엇보다 특정 종교인이기 이전에, '인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도인에게 삶은 그 자체가 종교다. 힌두나 무슬림이나 모두 자신의 종교를 "삶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기도로 깨어나고 기도로 잠들며, 매사에 신을 찾아 감사한다. 그래서 의례적인 행위는 물론 일상적인 행위와 선택에까지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

인도인에게 신화와 현실은 구별되는 것이 아니며, 과거와 현재는 서로 뒤섞여 있다. 인도인에게 내세와 윤회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며, 미래는 또 다른 미래의 과거다.

인도인은 힌두와 무슬림을 불문하고 종교면에서 매우 관용적인 전통을 지켜왔다. 힌두에는 부처도 힌두 최고신 브라만의 화신(化身) 중 하나일 뿐이다.

인도의 무슬림 역시 대부분 온건파들로서, 신과 내세에 대한 믿음 이상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갈등은 부단히 이어져 왔다. 럭나우에서 바라나시로 향하는 중간에 있는 아요디야는 꼭 10년 전 4백50명이 숨진 종교 분쟁의 현장이다. 그저 조용한 시골마을인데, 마을 한가운데 분쟁의 현장인 바브리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 힌두교 주요 신의 하나인 라마신이 탄생한 곳이라 믿어져 힌두 사원이 있던 곳인데, 16세기 무슬림들이 침입해 거대한 이슬람 사원을 지어버렸다. 이후 수백년을 그냥 살아온 힌두 교도들이 1992년 갑자기 몰려와 이 이슬람 사원을 흔적도 없이 부숴버렸다. 무슬림들이 사원이 파괴되는 최고의 치욕에 복수극을 벌이고, 그 공방이 인도 전역의 유혈사태로 번진 것이다.

유혈의 중심이었던 폐허엔 철조망과 군인들밖에 없었다. 철봉으로 만들어진 좁은 길을 따라 폐허를 한바퀴 돌 수 있었는데, 중간 중간 몸수색과 심문을 받아야 했다. 물론 무슬림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다. 폐허 한가운데 얕은 언덕 위에 천막이 쳐져 있고, 그 안에 자그마한 황금빛 조상(彫像)이 모셔져 있다. 동그란 눈에 볼이 팽팽한 어린이 얼굴 모양의 라마신이다. 호기심에 들여다보고 있자 옆에 섰던 군인이 '기도하라'는 뜻으로 손을 모아 보인다. 엉거주춤 서 있다가 뒤따라온 힌두교도들에게 밀려 나왔다.

어떻게 보면 장난감같아 보이는 저 신상이 유혈사태의 원인이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철저히 파괴돼 큰 돌조각조차 찾기 힘든 폐허. 그곳을 지키고자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즐비하게 서 있어야 하는가. 과연 무엇이 '종교의 나라' 인도에서 '종교분쟁'을 촉발하는 것일까.

중세의 십자군 전쟁에서 최근의 유고 사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종교분쟁은 종교 자체의 차이와 갈등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왜곡과 남용 때문으로 설명된다. 아요디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현재 인도의 집권당은 힌두민족주의를 내건 인도민중연합(BJP)이다. 힌두민족주의에 따르면 인도인은 힌두교도여야 한다. 무슬림은 카스트를 부정하고, 힌두교에서 개종해 떨어져 나갔기에 일종의 배신자다. 따라서 진정한 인도인일 수 없다.

인도민중연합은 종교와 민족주의를 하나로 묶어 무슬림을 배척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얻었던 것이다. 아요디야에서 발생한 참사 역시 힌두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세계힌두교협회(VHP)의 영향 아래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전쟁위기까지 갔던 카슈미르 사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파키스탄의 군사정부는 47년 인도와의 분리독립 이래 줄곧 강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해 왔다. 곧 힌두교에 대한 적대감이 외교정책을 좌우했고, 카슈미르의 이슬람교도를 은근히 충동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힌두 민족주의·이슬람 원리주의와 같이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왜곡된 이념을 과연 '종교'라 부를 수 있을까. 만약 이들이 종교라면, 전통적인 힌두교와 이슬람교는 종교가 아니라 '초(超)종교(trans-religion)'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전자가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공격하는 반면, 후자는 종교간의 벽을 뛰어넘어 서로를 껴안기 때문이다. 아요디야와 카슈미르의 선택은 분명 초월적·포용적 종교로서의 힌두교와 이슬람교이어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수많은 언어와 인종으로 구성된 아(亞)대륙 인도가 수천년간 하나의 문화권으로 공존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관용의 정신이었다.

인도 바라나시·럭나우·아요디아=정연교(경희대)교수·오병상 기자 ob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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