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멋진 新중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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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공격 의지가 날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부시는 지난 19일 이라크와 전쟁 수행에 필요한 권한을 자신에게 부여해 주도록 요구하는 전쟁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번 조치는 이라크가 유엔의 무기사찰을 무조건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후 결의안 통과를 놓고 의견이 갈라져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한 경고 성격이 강하다.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유엔이 지지하지 않으면 미국 단독으로 공격하겠다는 '통과 아니면 우회(pass or bypass)'의 압박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오래 전부터 준비된 것이다.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 인사들이 관여하는 신보수주의 싱크 탱크 '새로운 미국 세기 프로젝트(PNAC)'가 부시 대통령 당선 전인 2000년 9월 작성한 '미국의 방위 재건:신세기를 위한 전략·군·자원' 보고서는 미국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걸프지역에서 군사적 지배권 확립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제거와 관계 없이 미국은 걸프지역 전체를 군사적으로 통제해야 하며, 이라크와 '미완(未完)의 전쟁'은 이를 위해 필요한 정당화의 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볼 때 이라크 공격은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은 후세인을 제거한 후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우고 군대를 장기 주둔시킬 것이다. 미국이 우선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석유다.

이라크는 확인된 매장량만 1천1백25억배럴로 세계 2위다. 석유 전문가들은 이라크의 석유 매장량이 세계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먹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중앙아시아에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확보한 석유와 이라크 석유를 합하면 사우디를 위협할 수 있고,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카르텔을 무력화할 수 있다.

사우디는 중동에서 대표적인 친미국가로 손꼽히지만 사실 미국에 골치 아픈 존재다.

전투적 이슬람 원리인 와하브 교의(敎義)를 국가의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어 테러리즘의 온상이 되고 있다. 9·11 테러 가담자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출신인 데서도 알 수 있다.

얼마 전 미국의 국책연구소인 랜드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책위원회에서 행한 브리핑에서 사우디를 '악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사우디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큰 소란을 빚은 적이 있다.

다음 공격 목표는 또 다른 '악의 축'인 이란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이라크 3면에서 이란을 포위, 압박할 것이다.

시리아도 공격 대상이다. 시리아는 이라크와 같이 바트당(黨)이 지배하고 있으며, 이라크로부터 석유를 값싸게 공급받는 등 이라크와 가깝게 지내왔다.

시리아를 손보면 레바논이 위협을 느끼고, 이라크로부터 석유를 거의 무상으로 공급받아온 요르단도 어려워진다.

이같은 상황 변화는 이스라엘에 크게 유리하다. 주위에 적다운 적들이 모두 사라진 다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마음대로 요리하려 들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책략가들은 중동을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는 '멋진 신중동(Brave New Middle East)'으로 만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구 규모의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지배에 의한 평화)를 구축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과연 팍스 아메리카나가 세계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까? 섣부른 낙관은 금물(禁物)이다.

국제전문기자

chuw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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