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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직업교육에 매몰돼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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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학교육이 보편적 인간을 기르는 것인가, 아니면 특정 직업교육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 것일까.

지난 6일 발표된 교육인적자원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대기업.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19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우리 대학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국내기업 CEO들이 대학 전공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3.60점으로 나타나, 교양교육 만족도(4.08점)보다 크게 낮았다. 한마디로 아직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대학이 제대로 육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기술이 기업에서 필요한 수준의 26%라는 2002년 전경련 조사와 비교하면 다소 개선된 수치이지만, 그래도 국내 기업 경영자들이 대학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학의 교육목표와 기능은 매우 다양해졌다. 4년제 대학과 2년제 대학을 망라하여 각 대학은 연구중심 대학과 직업인 양성 대학 등으로 특성화하고 있다. 2년제 전문대학은 일찍부터 현장 중심의 기술교육과 실습을 강조해 왔다. 실용적인 맞춤형 학과를 설치하고 교과내용을 개편하는 등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 변화의 사이클이 너무 빨라 적지 않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몇 년 전까지 각광받던 특정 학과가 하루아침에 사회적.기술적 효용성을 잃고 그에 따라 그 분야의 전문인력들이 일자리에서 밀려나 길거리로 내몰리는 비정한 세태가 양산되고 있다.

한국의 미래가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은 맞다.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며 희망이다. 사람을 가르쳐 사람답게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른바 '무한경쟁'의 불확실성 시대에 교육은 사람의 생존과 번영, 기대와 희망을 창출해야 할 사명을 띠고 있다. 그래서 대학교육이 보편적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아무리 사회와 경제가 급변한다고 해도 개인의 성실성, 지구력, 조직화합력, 적극성, 자발성과 함께 삶의 균형감각, 통찰력과 같은 기본 인성(人性)이 필요하다. 사회 변화의 물결이 거셀수록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자질과 품성'을 가르치는 교육이 절실하다.

현대 직업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재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좁은 국토와 시장, 열악한 자원 환경 속에서 오로지 인적 자원에 의지하여 경제를 일구어온 때문인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세계 최상위권 수준이라고 한다. 이 스트레스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할 때 사회나 타인에 대한 적대감, 자기 자신에 대한 비하감 등으로 표출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무한경쟁 속에서 자기 자신과 가족, 공동체의 삶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삶의 감각과 통찰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성교육은 초.중.고 교육만으로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문적인 기술을 활용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 맞닿아 있는 대학에서 인성교육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최근 우리 교육에 스며드는 기술 유일주의에 입각한 단기적 효과에 집착하는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쟁에서 출발한다. 방향을 잘 잡아야 올바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낡은 개념일지 모르지만 '백년지대계'는 여전히 유효하고, 이를 위해 긴 안목으로 내다보는 결단과 인내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유재환 대원과학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