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일본인 납치'의혹 언제 처음 제기됐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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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일본 열도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로 들끓고 있습니다. 북한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한층 높아졌고요.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7일 평양에서 연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14명 가운데 8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에요.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인 납치문제 이외에도 일제의 식민지지배 사과 및 보상 등 여러가지가 논의됐지만 일본 여론은 납치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양국이 다음달부터 국교를 수립하는 방안에 대해 다시 논의키로 했는데,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 내 비판여론이 워낙 높아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답니다. 도대체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무엇인지 함께 알아볼까요.

1. '일본인 납치 의혹'이 뭔가요.

한마디로 북한 측이 일본인들을 납치해 북한으로 데려갔다는 거예요. 납치란 '본인은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을 뜻하지요. 이 문제가 처음 나온 것은 1987년 발생했던 '대한항공 항공기 폭파사건' 범인인 김현희가 한국에서 조사받는 과정에서 "'이은혜(李恩惠)'라는 이름의 일본 여성으로부터 일본어를 배웠다"고 진술하면서부터예요. 97년에는 니가타(新潟)현에서 여중생 요코다 메구미(당시 13세)의 실종사건을 수사한 일본 경찰이 "북한에 납치됐다"고 공식 발표했어요. 지난 3월에는 일본에서 항공기 '요도호' 납치사건 관련 재판이 열렸을 때 납치범인 적군파 대원의 전 부인이 "적군파들이 납치된 일본인의 결혼상대를 구하기 위해 83년 영국 런던에 유학 중이던 아리모토 게이코(有本惠子·당시 23세)를 북한으로 납치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어요. 일본 정부는 이같이 북한 공작원 출신자의 증언이나 자체 조사 등을 통해 최소한 여덟차례에 걸쳐 11명이 납치된 것으로 단정해 왔어요. 이들 가운데 아리모토를 제외한 10명은 모두 77∼78년에 집중적으로 실종됐고, 대부분 바닷가에서 사라졌답니다.

2. 북한과 일본은 지금까지 어떤 입장이었나요.

일본 정부는 김현희의 증언 이후 북한 측에 납치된 일본인의 신원과 생존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 왔어요. 그러나 북한은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보상 문제를 흐리기 위해 날조했다"며 일본을 비난해 왔지요. '납치 일본인'에 대해서도 '행방불명자'라고 표현해 왔어요.

그래서 납치문제는 북·일 관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지요. 일본이 91년 5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3차 북·일 국교정상화회담 때 김현희가 말한 '이은혜'의 신원 조사를 요구하자 북한 대표단이 "우리와 관계없다"고 화를 내 회담이 결렬되기도 했어요. 북한은 또 98년 6월 일본 측의 요구로 자체 조사를 한 후 "행방불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일본인 납치 의혹' 조사를 끝낸다고 선언했지요. 이전까지만 해도 "전제조건없이 북한과 국교수립 교섭을 하겠다"던 일본 정부는 이 때부터 "납치 의혹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으면 국교수립 교섭을 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꾸었지요.

그런데 북한이 17일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신원확인을 요구한 11명 이외에 추가로 3명이 더 납치됐다며 생존 여부를 알려온 거예요. 11명에 대해선 '4명 생존,6명 사망,1명은 납치 여부 불확실'이었고,3명에 대해선 '2명 사망,1명 생존'이었어요. 金위원장은 또 고이즈미 총리에게 "납치문제는 70년대와 80년대 초에 특수부대가 한 것으로 책임자를 처벌했다"며 사과했어요. 납치를 저지른 이유도 한국 등에 보내는 공작원(간첩)에게 일본어 교육을 시키고, 공작원이 납치된 일본인의 신분을 이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밝혀졌지요.

3.오랫동안 납치를 부인하던 북한이 왜 갑자기 시인했을까요.

일본과의 사이를 좋게 하고 싶어서예요.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은 지난 7월부터 대대적인 경제개혁을 시작했지요. 그러나 개혁하는 데 필요한 돈이 부족해 외국, 특히 경제대국인 일본의 투자가 매우 아쉬운 상황이에요. 또 미국과의 관계 개선도 발등의 급한 불이지요. 지난해 9월 미국에서 테러사건이 발생한 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지요. 미국은 테러집단을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라크를 공격하려 하고 있지요. 이를 본 북한은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북한으로선 일본과 관계개선을 하면 미국에 "북한이 달라지고 있다"는 이미지를 줘 대화의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金위원장은 실제로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에게 "미국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고 부시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고 요청했지요. 그런데 일본과 관계개선을 하는 데 가장 핵심문제는 납치문제였거든요. 고이즈미 총리도 북·일 정상회담을 하기 전에 수차례나 "납치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으면 국교수립 교섭을 재개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어요.

4. 앞으로 납치문제가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일본 정부는 "북한이 성의껏 답했다"고 평가한 것 같아요.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고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는 거쳐야 할 장애물이 꽤 많아요. 우선 일본 내 여론이 상당히 나빠요. 8명이나 숨진 데다 그 가운데는 중학생 때 납치된 요코다 메구미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지요.대부분 일본 신문들은 18일자 신문에서 '8명 사망' 소식을 가장 크게 다뤘어요. 일부에서는 '북한 범죄론'까지 들먹거리고 있지요. 또 일본 정부는 납치문제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북한에 대해 8명의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생존자 4명의 가족 면회와 희망시 귀국 조치 등을 요구할 계획이에요.

일본 시민단체인 '납치된 일본인을 구하는 전국 협의회'는 북한의 배상까지 요구하고 있어요. 일본 정부는 인정하지 않지만 '전국 협의회'와 '납치피해자가족 연락회'등은 11명 이외에 최소한 35명은 더 납치된 것으로 보고 있어요. 당연히 이들의 납치 여부도 확인해 달라고 요구하겠지요. 북한이 추가로 확인해준 2명(사망)도 35명에 포함돼 있어요.

day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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