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자김원일씨]"분단의 고뇌는 내 문학 숙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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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가 장편 공모에 당선됐을 때 심사위원이 바로 황순원 선생님입니다. 1980년대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선생을 모시고 술을 마시고는 했지요. 그 분 이름의 상을 탄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나 제 문학적으로나 영광입니다. 그 분의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을 좋아했어요. 작가로서 황선생과 같은 단아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게 제 소망이지요."

제2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원일(60)씨. 그로선 2002년은 여러모로 뜻깊은 해다. 인생의 한고비를 돌아 회갑을 맞았으며, '분단 문학의 대표작가'로 통칭되는 문학적 궤적도 황순원 문학상 수상으로 마침내 방점을 찍게 됐다.

수상작 '손풍금'은 대학원생 손자가 '분단시대 어느 사회주의자의 생애'란 주제로 논문을 쓰며 간첩으로 남파됐던 작은할아버지의 일대기를 정리한다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손자의 친할아버지도 화자(話者)로 등장해 동생과 자신의 관계, 손자 세대와의 단절감 같은 것을 토로하는 부분이 소설의 또 하나의 중심축으로 나타난다.

분단에서 비롯된 개인사의 고난을 형제 간, 세대 간의 대화를 통해 해소하고 한 순간 영롱히 빛나던 과거를 복원하려는 주제 의식의 건강함과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게 구성된 이중 시점의 형식이 새로움을 자아내고 있다.

전쟁과 분단을 휘감으며 쌓아온 그의 40여년의 문학은 이제 한국 현대 문학사의 한 부분을 넉넉히 채우고도 남을 만큼 성채를 쌓았다. 고부 간의 갈등을 분단의 비극적 상황과 관련시켜 파악한 『미망』에서 『불의 제전』과 『겨울골짜기』까지 그의 작품은 신산스러운 한국 현대사를 가족의 틀 안으로 교차시키며 분단의 현실을 가족사로 육화해 냈다. 특히 『마당깊은 집』은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사랑을 받았다.

작가인 동생 김원우씨가 "언제나 일만 하시는 형님"이라고 표현했듯 김씨가 40년 가까이 30여권의 책을 내며 문학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개인사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공산당 고위 간부로 월북해버린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연좌제에 대한 공포와 끔찍한 가난은 문학 이외에 다른 탈출구를 허용하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살짝 엿보고 싶었던 아버지의 존재. 이를 허용치 않고 "네 아비의 길을 따라가선 절대로 안된다. 오로지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라"고 한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이 혼재되었던 그의 젊은 날은 김원일 문학의 토양을 만들었다.

그는 "작품의 반 이상은 내 자신 가족 문제에 관한 것이다. 분단의 고뇌에 관해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회갑을 맞아 간행된 『김원일 깊이읽기』(문학과지성사)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보자.

"20세기 한 세기의 한국 역사가 가혹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특히 김원일에게 더욱 그러하다. 김원일은 전쟁과 분단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그것에 도덕적 성실성으로 저항하고 또 그것을 예술에의 의지로 승화시켜 삶과 문학 모두에서 승리한 거인으로 우뚝 섰다. 이제 환갑에 이른 그의 삶과 문학이 우리 가슴에 더욱 묵직한 울림으로 전해져 오는 것은 그것이 삶의 위엄과 문학의 영광에 대한 진실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의 관심은 한국 현대사를 살아내고 버텨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맞춰져 있다. 그리고 그는 문학의 임무란 그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며, 신산스러운 삶을 산 사람들을 위무하고 후세대에게 당대의 고난 앞에서 자유에 굶주렸던 경험들을 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에게 세속에서 운위되는 '문학의 위기'란 말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말초적이고 세속화된 매체와 컴퓨터 이용이 전면화된다고 해도 '문학의 위기'란 없습니다. 아무리 영상이 범람해도 생각은 문자와 언어로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순문학은 대중을 널리 상대하기보다는 엘리트, 즉 지적인 면에서 뭔가를 이뤄야겠다는 사람들 위주로 읽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중음악 시대에도 바흐와 베토벤 듣는 사람이 여전히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문학은 대중이 기피한다고 해서 위기를 맞지는 않습니다. 좋은 문학과 작가가 자기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존재함으로써 한 사회의 건강성이 유지되지 않겠습니까."

글=우상균·사진=최정동 기자

소설가 김 원 일은

▶1942년 생

▶62년 서라벌예대 문창과 졸업

▶66년 대구매일신문 공모 '매일문학상'에 단편소설 '1961ㆍ알제리' 당선돼 등단

▶소설 『어둠의 혼』 『겨울 골짜기』 『마당 깊은 집』 『불의 제전』 『슬픈 시간의 기억』 등

▶현대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동인문학상·요산문학상·이상문학상·이산문학상·기독교문화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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