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남자, 청춘을 되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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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아메리칸 뷰티 (SBS 밤 11시 40분)=중년 남자의 위기와 그 속을 비집고 들어온 마지막 한 줄기 정열을 차분하고도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낸 수작. 샘 멘데스 감독은 이 작품으로 2000년 아카데미 작품·감독·남우주연상을 포함해 다섯개 부문을 거머쥐었다.

가족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직장에서도 무시당하던 중 딸의 친구 앤젤라(미나 수바리)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발견하는 레스터 역을 연기파 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맡아 원숙하고 중후한 연기를 선사한다.

레스터와 앤젤라의 관계는 롤리타 컴플렉스(나이 어린 소녀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를 떠올리게 한다. 앤젤라는 중년 남자의 사막 같은 일상에 오아시스처럼 등장한 일종의 팬터지적 존재다. 장미 꽃잎이 휘날리는 가운데 앤젤라가 황홀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이 남성중심적으로 읽히기 보다는 레스터의 깊은 좌절감을 역설적으로 느끼게 하는 효과를 거두는 점이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다.

잡지사 직원인 레스터는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그는 아내 캐롤린(아네트 베닝)을 옆에 두고도 자위 행위를 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캐롤린은 물질 만능주의자. 레스터는 이런 속물스런 아내가 부담스럽다. 딸 제인(도라 버치)은 아빠가 세상에서 없어져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날 제인의 친구 앤젤라를 보고 한눈에 반하면서 레스터의 일상이 바뀐다. 그는 직장 상사를 협박해 뜯어낸 돈으로 스포츠카를 사고 보디빌딩을 시작한다. 1999년작. 19세. 원제 American Beauty. ★★★★(만점 ★5개)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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