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라운지] 폴란드 대사 일가 태국 카오락서 구사일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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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신조(天佑神助)'. 남아시아 해일 참사 한복판에서 타데우시 호미츠키 주한 폴란드 대사 가족이 죽음의 손길을 극적으로 피해 돌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7일 서울 성북동 대사관저에서 만난 수잔 김 호미츠카 주한 폴란드 대사 부인(폴란드 부인 성은 '이' 발음으로 끝나는 남편 성을 '아'로 고쳐서 쓴다)은 아찔했던 순간을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출발 1시간 뒤 사라진 해변 방갈로 호미츠키 폴란드 대사 가족이 묵었던 태국 카오락 해변의 방갈로. 지난해 12월 26일 쓰나미가 들이닥쳐 폐허로 변했다.[호미츠키 대사 제공]


짐은 잃었지만 … 서울 오는 길지난해 12월 30일 태국 방콕 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호미츠키 대사의 부인과 자녀들. 쓰나미로부터 생명은 구했지만 숙소에 있던 짐과 여권 등을 모두 잃어 고생이 심했다.[호미츠키 대사 제공]

해일이 인도양 연안 국가를 덮쳤던 지난해 12월 26일 아침. 호미츠키 대사 부부와 두 자녀는 태국 남부 팡아주의 카오락 비치 리조트에서 2주간의 겨울 휴가를 즐기는 중이었다. 숙소는 바닷가의 방갈로. 이날 오전 8시 가족들은 래프팅(급류타기)을 하기 위해 인근 계곡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시간 후 높이 10m의 지진해일이 닥쳐와 푸껫과 카오락 일대를 집어삼켰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방갈로에서 온 가족이 아침 식사를 막 끝낼 시간이었다.

이들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천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날은 해변에서 선탠과 수영을 하면서 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전날인 25일 저녁 일곱살짜리 아들이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가자"고 졸랐다. 대사 부부는 "다음에 하자"며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이 계속해 '놀러 가자'고 조르자 결국 타협을 하게 됐다. 인근 계곡 에서 래프팅을 하기로 일정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래프팅을 예약한 게 오후 7시30분이었다.

26일 오후 아무것도 모른 채 래프팅을 끝낸 대사 가족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카오락 해변이 폐허로 변했기 때문이다.

호미츠카 대사 부인은 "아이들이 충격받을 것을 우려, 현장에는 데려가지 않았다. 대신 숙소인 방갈로가 있던 자리에는 남편만 다녀왔다"고 말했다. 대신 호미츠키 대사는 처참하게 변한 현장을 촬영해 보여줬다.

대사 부인은 "해일에 강타당해 완전히 폐허가 됐다"며 "원래 일정대로 숙소에 있었으면 아무도 무사하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며 몸서리를 쳤다. 직접적 화는 피했지만 대사 가족은 짐을 모두 잃었다. "당시 가지고 있던 것은 500달러와 현금인출카드, 그리고 수영복뿐이었다"고 대사 부인은 털어놨다. 이 때문에 가족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3일 동안을 공포와 충격 속에서 지내야 했다. 결국 주 태국 폴란드 대사관에서 여권과 비행기표를 마련해 줘 태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카오락을 수색하던 태국 구조요원들이 숙소에 두고 갔던 아이들의 여권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구조요원들은 당연히 여권 속의 아이들이 실종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 사진은 한국과 캐나다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대사 부인은 "홍콩행 비행기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실종됐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래서 서울에 도착하는 즉시 한국.캐나다 등지의 가까운 친인척 모두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 안심시켜야 했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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