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70도… 남극 대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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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지난 2월 4일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인 수퍼보울에서 우승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팀의 감독 빌 빌리칙은 경기 직후 이렇게 털어놓았다. "우리는 경기 시작 전 섀클턴의 모험담을 보았고, 거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다"고. 밀레니엄을 코앞에 둔 1999년 11월 영국 BBC 방송은 온라인 여론조사를 통해 '지난 1천년간 최고의 탐험가 10인'을 선정했다. 마르코 폴로, 로알 아문센 등의 이름 옆에 어니스트 섀클턴 경이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섀클턴을 두드리면 그에 관한 수백여권의 책을 찾아볼 수 있다. 신간의 시대적 배경은 15세기부터 시작한 대탐험의 시대가 종착역에 이를 즈음인 1900년대 초반이다. 1914년 8월 27명의 대원을 이끌고 남극대륙 횡단에 나섰던 영국 탐험대가 얼어붙은 남극의 바다에 갇혀 배를 버리고 얼음덩어리를 타고 다니다 18개월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드라마를 줄기로 한다. 탐험대가 탔던 배 이름이 '인내'라는 뜻의 인듀어런스. 탐험대장은 섀클턴이었다.

남극은 다른 어떤 극지나 오지보다 위협적이었다. 시속 3백㎞를 웃도는 살인적인 바람과 영하 70도의 강추위부터 그렇다. 남극대륙 사우스 조지아를 출발한 인듀어런스는 목적지를 1백50㎞ 앞두고 얼음바다에 고립된다. 이때부터 5백여일간의 생존 투쟁이 시작된다.

압권은 천신만고 끝에 망망대해 무인도에 도착한 후 섀클턴이 다섯명의 부하 대원을 이끌고 길이 6m짜리 구명용 보트에 생명을 의지한 채 구조요청을 위해 사우스 조지아 기지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1천2백80㎞의 드레이크 해협을 통과해야 했고 도끼 한자루와 로프에만 몸을 맡기고 해발 3천m가 넘는 얼음산을 넘어간다. 결국 섀클턴이 포함된 '특공대'는 천신만고 끝에 애초의 출발점,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무사히 돌아온다. 탐험시작 6백34일째 되는 날 칠레 정부가 군함을 급파,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구조된다.

섀클턴은 훗날 회상한다. "얼음산을 넘을때 일행은 분명 3명이었는데 난 4명처럼 느꼈다. 이상하게 생각돼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그랬다"라고. 하느님의 존재를 느꼈다는 것이다. 희망이라고는 터럭만큼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을 타개한 탐험대의 여정은 뭉클하다.

인듀어런스의 모험이 단순한 탐험기가 아니고 인간애를 바탕으로 절체절명의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일종의 위기 관리 경영서로 읽히는 이유다. 탐험대원이자 사진작가였던 프랭크 헐리는 목숨을 담보로 찍었던 사진 원판을 지켜냈고, 책에 그것이 담겨 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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