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하는 軍… 의혹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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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해 12월 전만고(당시 23세)소위는 부산의 한 부대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하던 중 소대원을 데리고 긴급 출동했다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군 검찰은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소위의 형인 진서(27)씨는 지난달 동생의 부대에 사인(死因) 재조사를 요청했다. 어렵게 입수한 해당 부대의 사건 당일 상황일지에 '총기 실탄 제거 중 오발사고'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진서씨는 "얼마 전 헌병대 수사관이 '여자 문제로 자살한 것으로 결론났으니 그만 포기하라'며 여자 편지를 슬쩍 내보였는데 그 편지가 다름아닌 내 애인이 동생에게 보낸 안부 편지였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부대 관계자로부터 '진급을 앞둔 사단장이 사고사가 발생하면 피해를 볼까봐 사건을 자살로 처리하도록 지시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면서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반드시 규명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강숙희(33·여)씨는 군에서 죽은 동생의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9개월째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사관으로 자원입대한 동생 의택(당시 20세)씨가 지난해 11월 휴가를 나왔다가 부대에 복귀한 다음날 사망했기 때문이다.

당시 군 당국이 발표한 姜하사의 사인은 '진급 누락에 따른 비관 자살'. 그러나 姜씨는 군의 발표를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부대 인근 지하벙커에서 머리에 실탄 한발을 쏴 자살했다는 발표와 달리 동생의 머리에 두방의 총상 구멍이 나 있었던 데다 가슴엔 선명한 타박상까지 있었다. 姜씨는 "동생이 꿈에 나타나 '타살'이라고 쓰인 메모지를 건네고 사라지곤 한다"며 울먹였다.

두 사례 모두 군이 해당 군인들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은폐했음이 드러난 경우는 아니다. 하지만 군 검찰이 유가족들이 제기하는 의문을 충분히 풀어주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군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는 1998년 이후 한해 평균 2백여건에 달했다. 90년 걸프전 때 미군 측 전체 사망자 수가 2백60여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지않은 숫자다. 이중 자살 처리 비율은 40% 대에 이른다.

자살 처리 건수가 많다 보니 군의 자살 발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유가족들이 늘고 있다. 유가족들이 군의 자살 발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군 당국의 수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군에선 보안을 이유로 수사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가족들이 직접 나서 재조사를 요구하더라도 "타살 혐의자나 증거가 없으면 자살"이라는 모호한 결정이 내려지기 일쑤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김준곤 제1상임위원은 "자살 발표 전까지의 조사 과정이 투명하지 못한 데다 수사가 객관적으로 진행되지 않다 보니 유가족들의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망사고를 담당하는 국방부 관계자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가족들이 국가기관인 군 수사기관의 발표를 너무 믿지 않는다"며 "유가족들과는 좁혀질 수 없는 견해차가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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