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생씨 아들 탤런트 김주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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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2세대 연기자'들. 그들에게 아버지(또는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특별했다. 식탁에서보다 TV 화면으로 얼굴 보는 일이 다반사다. 함께 놀이 공원에 가는 것보다 연극무대에 서있는 모습을 보기가 차라리 쉬웠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허전함과 그리움을 달래며 수없이 다짐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끼의 대물림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어느새 똑같은 길을 나서고 있다. 그리고 "부모 이름 덕을 봤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몇십배 더 노력하고 있다. 중진 탤런트 김무생의 아들 김주혁도 예외가 아니다.

갸름하고 긴 얼굴, 앙다문 입술, 끝선이 올라간 가느다란 눈. 찬찬히 쳐다보면 그는 탤런트 김무생씨의 젊은시절 판박이다. 이 때문에 첫 드라마 출연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김무생씨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게 싫었다고 한다.

"집에서 아버지는 여느 아버지처럼 평범해요. 그냥 일상적인 대화를 하죠. 연기수업을 따로 받거나 서로 연기를 모니터해주지는 않아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주는 셈이죠."

그는 아버지에게 연기를 가르쳐 달라거나 평가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에 내 연기를 지도해주시면 그건 아버지의 것이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이유다. 아버지의 후광은 애초부터 바라지도 않았다. SBS 탤런트 시험에 응모할 때도 '누구의 아들'이라는 걸 꽁꽁 숨겼다. 실력으로 뽑히고 싶었고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총 12편의 연극에서 주인공을 따내며 이를 악물고 연습한 게 그에겐 가장 든든한 '빽'이었다.

아버지는 그가 연기자가 되는 것을 심하게 반대했다. 아들이 연기자의 힘든 길을 가는 걸 보기 싫었다. 하지만 그는 꼬마 때부터 아버지가 TV에 나오는 모습이 너무나도 친근하게 느껴졌고, 어느덧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고집스레 배우가 되길 결심해 연극영화과(동국대)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도 얼마동안 연극계에 몸담았다. 아버지가 그를 연기자로 인정한 건 최근 들어서다. 그도 그럴 것이 김주혁은 순전히 그의 힘으로 최근 SBS 골프드라마 '라이벌'에서 인기의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첫 주연인데 '잘 보이려고' 고민이 많았겠어요.

"시놉시스(줄거리)를 보면 뻔한 인물이죠. 부잣집의 반항기 있는 아들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잖아요. 평면적인 인물은 하기 싫었어요. 밤새 고민했죠. 어떻게 차별화할까…. 어깨에 힘을 빼는 수밖에 없더라구요."

김주혁(30)은 생각했다. TV 드라마에서 처음 맡은 주인공인데 튀고 싶은 마음 없었으랴. 그러나 자제 또 자제했다. 버터처럼 부드럽기 보다는 무덤덤하게, 툭툭 던지는 말속에 부드러움을 담기로 했다. '라이벌'에서 두 여자 사이를 오가며 중심점을 잃지 않는 그의 연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는 지난 몇년간 신인 아닌 신인으로 지내왔다. '카이스트'에서 냉철한 과학도를, '사랑은 아무나 하나'에서 잘나가는 의사 역을 맡았지만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스스로 그 이유를 외모에서 찾았다.

"제가 좀 심심해보이는 얼굴이에요. 한번도 잘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기분 좋아요. 잘생긴 연기자들 틈에서 연기력으로 버텨야 하니까 연기에 온 몸을 던지게 되잖아요."

-아버지 반응은 어때요.

"요즘은 그냥 툭 치면서 '잘 해'라고만 말씀하세요. 아버지 스타일이죠."

그래서 요즘엔 신이 난다. 올 가을 개봉하는 영화 'YMCA'에서도 비중있는 역으로 캐스팅됐다. 골프 드라마에서 골퍼로 나오는가 싶더니 영화에서는 아마추어 야구단 투수로 나온다.

"어, 그러고보니 다 운동선수네."

야구장과 골프장을 오가며 까맣게 태운 살이 싫지 않은 표정이다. 이번 골프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그는 골프채를 처음 잡아봤다. 친 공이 페어웨이를 벗어나기 일쑤지만 레슨 선생에게 "폼 하나는 죽인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는 말했다. "골프가 왜 매력이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욕심을 내면 절대로 공이 안 들어가요. 그저 마음을 비우고 툭툭 치면 잘 되더라구요." 연기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조금씩 깨우쳐가고 있는 듯했다.

글=박지영 기자·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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