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그 無限한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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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5년7개월의 공사 끝에 전남 영광의 원전 5호기가 최근 가동에 들어갔다. 6호기도 가동을 준비 중이다. 원자력 발전은 이미 국내 전기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의료·산업·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원자력 기술 활용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19일 서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영광 원자력 발전소. 원전의 핵심인 원자로가 들어가 있는 높이 65m의 돔 6개가 일렬로 서 있는 발전소는 조용하기만 하다. 굴뚝도 연기도 보이지 않으며, 시끄러운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거대한 송전탑만이 발전소에서 산으로 들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러나 두께 1.2m의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원전 6호기의 원자로 돔 안에는 수많은 펌프·기기들이 가동에 앞서 예열을 하느라 옆 사람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원자로의 온도는 섭씨 2백7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온도가 섭씨 2백95도 정도까지 올라가면 원자로 안의 핵 연료를 사용해 본격적으로 원자로를 가동하게 된다. 5호기에 이어 6호기도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5,6호기는 형태나 부품 등이 모두 같은 쌍둥이다.

영광 원전의 전력 생산 능력은 5호기의 1백만㎾를 합쳐 모두 4백90만㎾에 달한다. 전라남북도 전체와 충청도 일부의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양이다. 우리나라가 가동 중인 원전은 모두 17기로 국내 전체 전력 수요의 41%를 담당한다.

과학기술부 조청원 원자력국장은 "원자로를 비롯, 증기 발생기·연료봉·터빈·발전기·각종 파이프 등 1백여만개의 부품 중 76%(금액 기준)가 국산"이라고 말했다. 우리 손으로 설계해 건설한 원자력 발전소에서 우리가 만든 원자로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 수출국 대열에 합류=두산중공업은 이달 들어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6천8백만달러(약 8백억원) 상당의 원자력 발전소의 핵심설비인 증기 발생기 4대를 주문받았다. 1999년에 이어 두번째 미국 수출이다. 2001년에는 중국에도 공급했다.

99년 당시 한국전력은 중국 진산 원전 운영요원 80여명을 훈련시킨 것을 비롯, 2003년까지 기술인력을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연구용 원자로에 사용하는 핵연료를 미국·프랑스에 수출하고 있기도 하다. 북한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건설 중인 원자력 발전소에는 원자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설비가 국산으로 들어간다.

이외에 베트남·루마니아 등 원전사업 후발국에 기술·설비 수출을 추진 중이다. 국산 원전 기술의 성숙기이자 본격적인 수출길이 열리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 기술은 '요술 손'=원자력 발전은 우라늄에 중성자를 초속 2.2㎞로 쏘면 우라늄 핵이 연쇄적으로 쪼개지면서 열과 방사선을 내뿜는 원리를 이용한다. 그 중 열로는 물을 끓여 그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그러나 이 때 나오는 방사선은 처치곤란이다. 반핵단체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이 방사선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원전은 팬텀 전투기가 부딪쳐도 끄떡 없을 정도인 두께 1.2m의 철근 콘크리트 격납고에 원자로가 들어가 있을 뿐더러 방사선 차폐시설이 갖춰져 있어 원자로 외부에는 영향이 없다.

방사선은 원자력 발전에서는 골칫거리이지만 의학·과학·산업에서는 신(新)원자력으로 불리며 원자력 기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높은 투과력, 살균력, 물질의 성질 변화력 등은 첨단 과학과 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종류로는 X선·감마선·중성자선 등이 있다.

방사선을 내는 물질인 방사성동위원소는 우라늄뿐 아니라 납·인·이리듐·은·코발트 등 다양한 물질로, 다양한 종류를 만들 수 있다. 방사선의 세기부터 방사선을 내는 기간까지 조작이 가능하다. 이런 물질을 만드는 데는 원자로나 가속기 등이 이용된다. 현재 세계적으로 2천여종의 방사성동위원소가 생산되고 있다.

암을 가장 정밀하게 찾아내는 양성자단층촬영장치(PET)는 방사선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최첨단 의료기기. 방사성동위원소를 몸에 주사한 뒤 이 장치로 찍으면 암 덩어리에서는 평균치보다 훨씬 많은 방사선이 나오므로 암의 유무를 알아낼 수 있다. 공항에서 짐 속의 마약을 찾아내는 것도 방사선 기술이 핵심이다.

포항방사광가속기에서는 X선을 이용해 태양빛보다 수억배 밝은 빛을 만들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알아내고, 살아 있는 생물의 내부 구조를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한다. 우량 품종으로 농작물을 개량하기도 하고, 암을 치료하며, 비행기를 뜯지 않고도 어느 곳의 부품에 이상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수백㎞의 송유관 어느 곳에 얼마만큼 큰 구멍이 나 있는지도 방사선 기술을 이용하면 손쉽게 파악된다.

한국원자력연구소 박경배 박사는 "원자력 발전 기술은 세계 6위권에 들 정도로 수준급이지만 의학·산업·첨단과학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방사선·방사성동위원소 기술은 크게 뒤떨어져 있어 적극적인 육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세계 방사선·방사성동위원소 관련 산업 규모는 연간 3천2백억달러(약 3백84조원, 발전부문 제외).이 중 미국이 1백82조원, 일본이 78조원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천7백여억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의료장비·검사장비·멸균장비 등 대부분의 기기와 방사성동위원소를 수입하고 있다. '원자력 4강'전략이 시급한 실정이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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