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임원식 예술원 회원]한국 교향악 이끈 지휘계 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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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25일 83세로 타계한 원로 지휘자 임원식(林元植)씨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스포츠광이었다. 올림픽·월드컵과 국내외의 각종 선수권대회를 찾아가 응원했다. 박찬호 선수의 야구 중계방송도 빼놓지 않고 봤다.

최근 기자가 병문안을 갔을 때 고인은 병석에서 불편한 몸으로 K-리그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는 "하필이면 수술 날짜가 월드컵 결승전 날로 잡힐 게 뭐야. 정몽준 회장과 요코하마(橫濱)에 같이 가기로 했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1968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공연 직전의 일이다. 그는 아시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의 한·일 결승전을 보러 연미복 위에 외투만 걸치고 장충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경기가 연장전까지 가는 바람에 중간에 나오지 못했다. 그는 가까스로 공연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택시에 지휘봉을 두고 내린 게 아닌가. 할 수 없이 그는 공연장 바로 옆에 있던 '고려정'이란 냉면 집에서 젓가락을 빌려다 지휘를 마쳤다.

고인은 도쿄(東京) 유학 시절 가곡 '아무도 모르라고'(김동환 시)를 발표한 뒤 오선지에서 거의 손을 뗐지만 '농구의 노래'만큼은 작곡했다. 농구협회 이사를 지냈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한축구협회 고문으로 활동했다.

평북 의주 태생인 그는 도쿄의 니혼(日本)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만주 하얼빈 음악원에서 일본 지휘계의 거목인 아사히나 다카시(朝比奈隆·1908~2001)를 사사했다. 야간 댄스홀에서 피아노를 쳐 학비를 벌었다.

고인은 해방 후 국내 최초의 교향악단인 고려교향악단을 창단,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베토벤의 '운명' 등 주옥 같은 명곡의 국내 초연을 이끌었다. 48년 소프라노 김자경 등이 출연한 국내 첫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지휘했고, KBS교향악단의 초대 상임지휘자(56~70년)를 지냈다.

林씨는 줄리아드음대에 유학할 때 음악의 조기(早期)교육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피란지 부산에서 이화여고 교사로 있으면서 서울예고 개교의 산파역을 맡아 61년부터 14년간 서울예고 교장을 지냈다. 그는 이 기간 중 금난새(유라시언 필하모닉)·금노상(인천시향)·장윤성(울산시향)씨 등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그는 지난 5월까지도 서울예고 정기연주회를 지휘하는 등 평생 지휘봉을 놓지 않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 지난 6월 1일 도쿄 필하모니를 객원 지휘한 게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林씨가 56년에 창설한 이화· 경향 콩쿠르의 1회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이경숙(李慶淑·58·연세대 교수)씨는 "열두 살때 선생님의 지휘로 KBS교향악단과 협연한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며 애도했다.

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작곡가 윤이상씨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돼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구명 운동을 벌였을 때의 일이다. 林씨는 국내 음악인으로는 유일하게 증인석에 나와 용감하게 변론을 폈다. 그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더니즘의 첨단 기법에 입각한 윤이상의 작품은 숙청감"이라며 "유럽 음악계에서는 한국 음악가 2백~3백명을 묶어놓은 것보다 이 한 사람의 비중이 크다"고 했다.

제자인 한국지휘자협회장 박은성(朴恩成·57·수원시향 음악감독)씨는"고인은 교향악 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젊은 음악가를 발굴, 데뷔 무대를 마련해 주셨다"고 회고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이며 발인은 30일 오전 7시. 장례식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예고에서 치른다. 02-3010-2270.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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