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연구 왜 5년 걸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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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구촌 생태학자들과 환경전문가들의 최대 축제인 세계생태학대회가 며칠 전 막을 내렸다. 횟수로는 제8차 대회였지만 21세기 최초의 대회가 고도 성장으로 유명한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뒤늦게 맡아 준비한 행사라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참가했던 세계 각국의 동료 생태학자들로부터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자화자찬인 감이 없지 않아 좀 쑥스럽긴 하지만 축구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세계 생태학계에 우리의 위치를 확실하게 심어준 의미 있는 행사였다.4강은 아니더라도 8강까지는 오른 것 아닌가 은근히 자부해본다.

이번 대회에서 일부러 입을 모은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공동주제로 떠오른 것이 바로 장기생태연구(LTER:Long Term Ecological Research)의 중요성이었다. 개막식의 기조연설을 맡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그랜트 교수를 시작으로 거의 모든 기조 연설자들과 다른 많은 학자들이 한결같이 장기적인 생태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제 며칠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릴 세계환경정상회의(WSSD)에서는 리우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다시 한번 '지속가능한 발전'이 중심 의제가 될 것이다. 이번 서울 생태학대회에서도 '지속가능한 발전'은 중요한 기본개념으로 깔려 있었다. 하지만 서울대회는 정상회담이 아니라 학술회의이기 때문에 폐회식에서 발표한 '서울선언문'에서도 장기생태연구를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

그랜트 교수는 남미의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그 옛날 다윈이 잠시 관찰하고 자연선택론의 기본 개념을 얻은 방울새들을 무려 30년 동안이나 연구해온 생태학자다. 그저 몇년 연구하고 끝냈으면 도저히 관찰할 수 없었을 온갖 진화적 변화들에 대한 확실한 증거들이 그의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은 이미 반세기 넘게 박새의 생태를 연구하고 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도 수십년간 스코틀랜드 앞바다의 작은 섬에 서식하는 사슴들을 관찰하고 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장기생태연구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1997년부터 까치의 생태를 연구하고 있다. 까치는 북반구 거의 전역에 걸쳐 분포하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새지만 우리나라만큼 개체밀도가 높고 천혜의 연구조건을 갖춘 곳이 없다. 그 덕에 연구를 시작한 지 불과 5년도 안돼 까치 연구의 메카로 확고한 자리를 굳히고 있다. 현재 우리 연구실에서는 까치의 번식 생태와 음성신호, 둥지 선택, 먹이 저장 행동 등은 물론 전세계 까치들의 유전적 계통 분석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제는 옛날 같지 않아 연구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논문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도태당하기 일쑤다. 실제로 나는 까치 연구에 5년간의 연구비 지원을 약속받았지만 겨우 첫해를 가까스로 마친 시점에서 다량의 논문을 생산하는 다른 연구들에 비해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연구비 중단이라는 수모를 겪은 적도 있다. 그래서 까치 연구를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그간의 결과를 정리해 논문을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처음 두 해의 데이터는 그런대로 비슷했지만 셋째 해는 혹독했던 겨울 날씨 때문에 확연히 다른 데이터가 나온 상태에서 도저히 논문을 쓸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 해를 더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겨울 날씨는 예년과 비슷했는데 의외로 봄 날씨가 얄궂어 까치들은 또 다른 데이터를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결국 5년째 데이터를 기다리기로 했다. 생태연구는 이처럼 어쩔 수 없이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세계생태학대회에는 미국과학재단의 장기생태연구팀장이 참석했다.미국과학재단은 이미 대규모의 예산을 장기생태연구에 할애한 상태에서 합리적인 연구방향을 모색하는 중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과학재단과 예산을 담당하는 부서들도 1~2년 단위의 가계부 적기에만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을 길렀으면 한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외국 생태학자들은 모두 우리 환경부의 '10년 프로젝트'에 많은 찬사를 보냈다. 우리도 이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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