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간통죄없앨때됐다 : 實刑판결 급감… 처벌효과 떨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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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실효성이 없다=K씨(34)는 상습적으로 외도를 한 남편 P씨(37)를 간통죄로 고소했다. 그는 남편이 감옥에서 죄과를 톡톡히 치르길 바랐다. 그러나 P씨는 불구속 기소됐다. 남편은 회사도 그대로 다니고 사귀던 여자와 관계도 유지하면서 법정에 섰다.

법원은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더욱이 남편에게 자녀 양육권이 넘어가면서 K씨는 위자료도 많이 받지 못했다.

간통죄에 대한 법원의 입장이 관대해지면서 간통죄의 처벌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 1984년엔 간통죄 기소자 중 95%가 구속기소됐다.

하지만 98년에 구속기소 비율은 기소자 중 66%로 뚝 떨어졌다. 불구속이 많아진 것이다.

법원의 판단 또한 마찬가지다. 84년엔 판결 중 실형과 집행유예(석방)의 비율이 28.4%대 10.7%였으나 93년엔 20.9%대 26.0%로 역전됐고 98년에는 26.7%대 34.4%로 집행유예가 더 많아졌다.

조광희 변호사는 "최근 법원의 판결 경향을 볼 때 간통죄는 형벌로서의 의미를 점차 상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많은 여성이 외도한 남편을 가정으로 되돌릴 수 있는 설득수단으로 간통죄에 의지한다. 하지만 이 또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5년 전 외도를 한 남편을 간통으로 고소했다가 남편의 반성으로 취하했던 A씨(55). 최근 다시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은 과거의 여자와 계속 만나고 있었다. 그는 결국 남편과 합의이혼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강정일 상담위원은 "간통죄로 처벌해도 일시적 후회나 반성에 그칠 뿐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간통죄 제도가 간통을 예방해줄 것으로 보는 것 또한 잘못된 인식으로 지적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91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간통 경험자의 91%(1백29명 중 1백17명)가 '처벌 대상이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연구원 조은석 검사는 "간통 경험자가 처벌 규정과 관련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간통죄 제도를 알고 있는 것 자체가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여성에게 유리하지 않다=이혼사유 통계만 보면 부정한 행위를 한 남녀의 수는 비슷하다.

법원 통계에 의하면 90년 이혼 사유 중 남자쪽 부정이 52.2%, 여자쪽이 47.8%였던 것이 98년 57.2%대 42.8%로 큰 변화가 없다.

이는 여성의 외도가 남성 못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남성의 외도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사회풍토 탓이다.

특히 남편의 상습적인 외도와 폭력에 시달리다 단 한번 실수한 아내가 간통죄로 고소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여성 상담기관들의 공통된 얘기다.

서울지검 최승영 계장은 "현실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이 부정행위를 할 확률이 두배 이상 높다고 볼 때 여성이 남성보다 두배 이상 불리하게 간통죄 처벌을 받고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최근 여성들의 성개방 풍조는 간통죄가 여성에게 오히려 굴레로 작용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한국성과학연구소가 지난해 벌인 '기혼 여성의 성의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15%가 '혼외(婚外)정사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혼외 정사를 할 수 있다'는 응답도 14%였다.

<그래픽 참조>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강정일 상담위원은 "지난해부터 여성 배우자 외도에 관한 남성의 상담이 한달 평균 1백~2백건으로 남성 배우자 외도 상담의 10%를 넘어섰다"며 "기혼자 외도가 더 이상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유전무죄·무전유죄?=많은 여성단체들은 "현 상황에서 간통죄가 여성들이 위자료를 많이 받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간통죄로 고소하면 2천만~3천만원대의 위자료 평균치보다 최소 1천만원 가량 더 받아낸다는 것이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양정자 원장은 "경제적으로 불리한 처지의 여성들이 이혼 뒤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려면 현재로선 간통죄에 의지해서라도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간통죄가 부정한 배우자 처벌이라는 본래의 의도가 아니라 위자료를 많이 받는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부작용 또한 늘고 있다. 유전무죄·무전유죄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98년 간통죄로 고소당한 사람 가운데 하류층이 전체의 57%(7천1백85명), 중류층이 18%(2천2백70명)였다. 중·하류층이 75%에 이른 반면 상류층은 0.7%(93명)에 불과했다.

<그래픽 참조>

이 결과는 부유한 사람들이 간통을 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돈으로 처벌을 피해간다는 의미다.

한양대 법대 오영근 교수는 "공권력이 사생활에 간섭하다 보니 일어나는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법리상 논란=간통죄의 당장 폐지에 반대하는 여성단체들은 "간통죄 폐지의 방향은 맞지만 이혼여성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사회 조건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간통죄 폐지를 다른 조건과 결부시키는 것은 법리적으로 잘못이라는 반론도 크다.

여성단체들은 91년 가족법에 재산분할 청구권이 신설되면서 이혼여성이 가족 재산의 50%까지를 자신의 몫으로 주장할 수 있게 됐지만 남편이 재산을 숨길 경우 현실적으로 추적이 쉽지 않은 점을 예로 든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위원은 "아내가 남편의 은행계좌 하나 확인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조위원은 ▶부부공동 재산제 도입▶호주제 폐지 등을 간통제 폐지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부부공동 재산제란 프랑스·스웨덴 등이 시행 중인 제도로 혼인 중 취득재산을 명의에 관계 없이 부부 공동소유로 간주한다.

그러나 법률전문가들은 "간통죄 폐지를 다른 사회 상황과 더불어 해결하려는 것은 법리상 모순"이라는 입장이다.

최재천 변호사는 "위자료 등 이혼시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제도는 그 제도의 문제일 뿐 간통죄 폐지와 직접 관련이 없다"며 "호적제 폐지 등 다른 문제는 별도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손민호·김현경 기자

◇도움말 주신 분=강정일·박소현·조경애(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 권혁란(『이프(IF)』편집장) 김양균(변호사) 김진숙(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검사) 김현철(헌법재판소 연구관·판사) 남인순(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양정자(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장) 오영근(한양대 법대교수) 유경희(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 성 상담소장) 이경숙(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부장) 이문자(한국여성의 전화연합 회장) 이상만(성균관 의례부장) 조광희(변호사) 조은석(한국형사정책연구소 검사) 최승영(서울지검 계장) 최재천(변호사)

한국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유부남과 관계를 갖다 그의 아내로부터 간통죄로 고소당한 호정(강수연 분)이 한마디 한다.

"언제부터 나라가 내 아랫도리까지 간섭했지?"

간통(姦通). 지극히 민감하고 개인적인 사안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르다. 공권력이 개인의 사생활을 조사해 불륜 여부를 판단, 처벌하는 국가적인 일이다.

간통제를 폐지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이렇듯 국가가 개인의 애정사까지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데 있다. 나아가 더 큰 이유가 있다. 간통죄 유지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간통죄는 여성의 보호막으로서의 기능이 크게 약화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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