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맥주 만드는 건 맛 창조하는 엔지니어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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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지난 15일 오후 7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 몰의 '오킴스 브로이하우스'. 5인조 록밴드의 생음악 연주가 울려퍼지는 5백석 규모의 홀 안은 밀려든 손님들로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조선 호텔에서 운영하는 이 곳은 소규모 맥주 제조 시설을 통해 직접 생산한 '하우스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펍 중 하나다.

문을 연 지 불과 한 달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입소문을 타고 어느새 '떠'버린 이 가게의 맥주 맛을 책임지는 사람은 독일인 도미닉 테퍼(30)와 조아힘 킬리안(27), 한국인 맥주 제조사 이상수(30)씨다.

이들은 매장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맥주 제조 기계 앞의 바(bar)에 앉아 손님들과 어울려 시원한 생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일이 끝난 뒤에도 바로 퇴근하지 않고 이렇게 종종 손님들과 함께 한 잔 한답니다.손님들이 우리가 만든 맥주 맛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거든요."

이제 곧 독일로 돌아간다는 테퍼는 "3개월 동안 이렇게 지내다 보니 친구가 된 손님들도 많다"며 웃었다.

테퍼의 뒤를 이어 이곳의 '브라우 마이스터(Brau Meister:맥주 맛을 만들어내는 양조 책임자)'를 맡게 된 킬리안은 일주일 전 한국에 왔다.

"오자마자 한국 맥주부터 마셔봤는데, 맛이 훌륭하더군요. 하지만 저희가 만드는 맥주는 여과 과정이나 열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는 신선한 맥주라 한국 손님들이 지금까지 마시던 맥주와는 확실히 맛이 다를 겁니다."

하우스 맥주는 보통 병맥주가 40일 정도의 제조 기간을 거치는 것과 달리 2~4주 정도면 만들어진다. 기존 맥주들은 장기간 유통을 위해 효모를 제거하지만, 하우스 맥주는 효모가 그대로 살아 있다. 이 때문에 맛이 깊고 진한 것이 특징.

테퍼와 킬리안의 고향인 맥주의 본고장 독일에는 1천2백여개 중소규모 맥주 제조장이 전국에 퍼져 있다. 맥주를 생산해 즉석에서 판매하는 하우스 맥주도 6백여개나 된다.

맥주 양조 전문가 양성 기관도 따로 있다. 킬리안도 세계 최고의 맥주 전문가 교육 기관의 하나로 알려진 독일 뮌헨 공대 바이슈테판 출신이다. 조선 호텔에서 소믈리에(와인 감별사)로 일하다 맥주 양조 전문가가 되기 위해 테퍼와 킬리안에게서 실무를 배우고 있는 이상수씨 역시 내년에 독일로 '맥주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하우스 맥주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화학·수학·물리는 필수입니다.거기다 제조 기계에 대해서도 훤히 꿰뚫어야 하니 정말 배울 것이 많은 셈이죠."

테퍼와 킬리안은 "브라우 마이스터는 몸도 튼튼해야 한다"고 거들었다.50~60㎏짜리 맥주 통을 거뜬히 옮길 수 있어야 하는 데다 맥주가 발효되는 상태를 매일 최소한 1~2차례는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휴일도 따로 없는 직업이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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