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대통령 탄핵 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지리아가 심각한 정정불안에 휩싸여 있다.

하원이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65·사진)에게 사퇴를 권고하자 대통령은 상·하원 의원들에 대한 부패 조사로 맞서면서 나이지리아 정국에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하원은 지난 13일 긴급회의를 열고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하고 부패를 방치했다"며 "2주 내 자진 사임하지 않으면 탄핵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오바산조 대통령은 사임 권고를 일축하고,상·하원에 감사반을 투입해 의원들의 부패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탄핵안 결의 가능성=집권 인민민주당(PDP)이 상·하원 의석의 60%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양원 재적의원의 3분의2 찬성을 얻어야 하는 탄핵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BBC방송 등 외신들은 "집권당 일부까지 가세해 탄핵안을 제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오바산조 정권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바산조는 결의안에 찬성투표를 한 PDP 소속 의원들을 색출해 징계키로 하는 등 '집안 단속'에 나섰으나 결의안 투표방식이 찬반의견 중 목소리가 큰 쪽이 이기는 '고함투표(Voice Vote)'이기 때문에 누가 반란표를 던졌는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실정과 무능이 탄핵 원인=탄핵의 표면적인 이유는 지나치게 잦은 외유 등 국정 소홀이다.

일간지 '디스 데이' 등 현지 언론들은 이달 초 오바산조 대통령이 3년반의 집권기간 중 1백3차례나 외국을 방문해 총 3백70일을 해외에서 보냈다며 23년째 재임 중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보다도 외유가 더 많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탄핵의 진짜 배경은 경제난·관리부패·종교 및 종족 갈등 등 고질병을 해결하지 못한 오바산조의 무능이다. 나이지리아는 세계 6위의 산유국이지만 부패한 관료조직이 원유대금을 빼돌리는 바람에 국가경제에 돌아가는 돈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 결과 오바산조 집권 전 43%에 머물렀던 극빈층이 재임기간에 66%로 늘었다.

◇심각한 국내사정=나이지리아는 북부는 이슬람, 남부는 기독교로 종교가 갈려있는 데다 2백50여 종족이 한데 엉켜 있는 탓에 종족·종교갈등이 심각하다.

특히 오바산조 집권 직후 북부주(州)들이 도둑질에 수족절단, 간통죄에 사형을 적용하는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채택하면서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충돌이 격화돼 이 과정에서 1만명 이상이 숨졌다. 그러나 오바산조는 충돌을 진정시키는 데 실패한 데다 진압과정에서 정부군의 가혹행위를 방치했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강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