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선거 제대로 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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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16대 대통령 선거일이 4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15대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미디어의 역할이 매우 클 것으로 예측된다.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통령선거를 미디어선거로 치르겠다는 선거법 개정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중앙선관위는 지난 7월 28일 기존의 정당·후보자연설회나 간담회 등을 폐지하는 대신 후보자 공약을 취합해 선관위가 합동으로 신문광고를 내고 KBS가 TV합동연설회를 의무적으로 개최케 하는 등의 조항을 신설하고, TV·라디오에 내보내는 후보자 광고나 방송연설의 횟수를 늘리고 그 비용의 상당부분을 국가가 부담하는 등의 선거법 개정의견을 발표했다.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이같은 내용의 전부가 아닌 일부분만 채택된다고 할지라도 이번 대통령선거는 그야말로 미디어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공정하고 효율적인 미디어선거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가운데서도 후보자 상호간 TV토론회 준비가 가장 중요하다. 후보자의 광고나 방송연설회 등은 절차만 규정하면 큰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TV토론회는 그렇게 단순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유권자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TV토론회는 공정한 가운데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할 수 있게 조직돼야 하므로 많은 미묘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숙제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정치의 특성에 맞는 TV토론회 모형을 개발하는 일이다. 지난 15대 대통령선거의 경우 선거법 개정안이 대통령 선거일을 불과 1개월을 앞둔 1997년 11월 14일에 시행되고 15일에야 대통령선거 방송토론위원회가 구성된 탓에 불가피하게 미국식 모델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미국식 모델의 도입이 우리의 풍토에 적합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우리 문화와 정치현실에 맞는 TV토론회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토론위원회를 상설기구로 두고 지속적인 연구를 해야만 한다고 학계를 비롯한 시민단체 등이 강력히 주장했지만 정부나 방송사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났으니 나 몰라라였다.

그런 상태로 오늘까지 왔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우리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TV토론회를 하기는 틀렸다. 15대 때의 경험을 토대로 미국식 모델을 약간 수정·보완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같은 본질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해결해야만 할 일이 너무 많다. TV토론회 초청자 범위를 정하는 일, 1대 1로 할 것인지 아니면 다자간 토론으로 할 것인지, 질문에 대답할 시간은 얼마로 하며 심층적인 토론을 이끌어낼 방법은 무엇인지, 사회자의 권한은 어떻게 정할 것인지 등 토론회의 조직과 관련된 세밀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뿐만 아니다. 다양한 이익집단과 시민운동단체 등의 의견과 요구를 토론회에 반영하기 위한 방안의 강구, 공영방송사가 아닌 수많은 민영방송사들의 독자적 토론회 개최를 조정하는 문제, 토론회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제고하기 위해 토론회가 얼마나 공중의 필요에 부응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장치의 마련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수두룩하다. 그밖에 KBS와 MBC가 공동 주최하는 데 따른 두 방송사 사이의 이해를 조절하는 일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학계와 시민단체들이 대통령선거 방송토론위원회를 빨리 구성해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주최 측인 두 공영방송사가 믿는 데가 있어 느긋한 것인지, 그렇지도 않다면 인식부재인지 그 속을 알 길이 없다.

선거법은 대통령선거일 전 60일까지 토론위원회를 구성하게 돼있다. 이제 더 늦출 시간이 없다. 미디어선거, 특히 TV토론회의 막중한 역할을 인식한다면 토론위원회를 서둘러 발족시킬 일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면 방송협회에 연구팀이라도 만들어 준비를 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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