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를 올려라" 연주홀 리노베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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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요즘 공연계의 화두는 공연장의 리노베이션(시설 개·보수)이다. 아직 자세한 청사진이 나오지 않았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3천8백석)이 오는 10월말부터 내년 8월까지 총 3백10억원의 예산을 들여 개·보수 공사를 한다. 정부에서 매입을 추진 중인 옛 명동 국립극장(현 대한종금)이 재개관한다면 이에 앞서 리모델링 공사가 필수적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애초에 회의장 겸용으로 설계됐다. 영국 런던의 바비칸 홀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콘퍼런스홀은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가능한 한 짧게 만들기 위해 부채꼴로 설계하기 일쑤다. 그래서 음향의 명료도·앙상블·밸런스 등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다.

에어컨·조명 등 극장 시설의 노후에 따른 소음도 장애 요인이다. 특히 고급 오디오와 신축 공연장의 첨단 음향시설에 익숙한 관객들이 오래된 공연장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불만은 심각하다.

요즘 들어서는 심포니 전용홀을 다용도로 활용하는 추세 또한 감안해야 한다. 독주·실내악·교향악 등의 악기 편성에 따라 잔향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고, 재즈·크로스오버·월드뮤직 등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하는 음악도 수용해야 한다. TV중계나 녹음을 위한 첨단 시설 또한 필요하다.

1990년대 이후 우후죽순처럼 문을 연 지방 문예회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개 다목적 홀로 설계돼 어떤 장르에도 전문적 공연장의 역할을 하긴 미흡하다. 외관과 규모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무리하게 객석수를 늘렸고 내부 설계는 '칸 나누기'식이 되기 일쑤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내부 마감에 흡음재(吸音材)를 사용해 잔향시간이 짧다는 점이다. 광주·전주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공연장이 잔향시간(殘響時間)이 1.0초 내외다. 오케스트라는 물론 오페라·연극을 공연하기에도 턱없이 짧다. 건축음향은 무시한 채 전기음향에 의존하는 다목적홀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80년대 이후 지방에서도 다목적홀보다 전용홀을 건립하는 추세다. 나고야(名古屋)·도야마(富山) 등지의 노(能)극장이 대표적인 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옛 건물을 헐어버리고 공연장을 신축하는 것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나 문화재적 보존 가치 때문에 리노베이션을 택하게 된다.

지방에서도 개·보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지난해 공사를 끝낸 울산문예회관이 모범적 사례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객석수와 외관의 위용을 자랑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공연장도 끊임없는 변신과 업그레이드 없이는 연주자와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마련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어떻게 고칠까

1.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 시설 확충도 시급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음향이다. 공연장 설계는 안에서 시작해야 한다. 무대와 측벽은 반사, 천장은 확산, 객석 뒷부분은 흡음의 효과를 내야 한다. 천장에 구멍을 하나 뚫는 작은 공사도 음향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2. 공연장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평가해야 한다. 개·보수에 앞서 음향 컨설턴트의 측정, 음악가들의 주관적 평가를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다.

3. 리노베이션 계획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만큼 개관 직후부터 10~20년 후의 개·보수 작업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4. 공연장 경영 철학과 운영 목표부터 세워야 한다. 어떤 공연을 올리느냐에 따라 작업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5.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은 공연장의 경우엔 원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분장실·식당·사무실·연습실·매표소·무대창고·교육센터 등을 인접한 별관 건물에 수용하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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