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할인경쟁 3년만에 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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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햄버거·치킨 등을 판매하는 패스트푸드 업계가 오랜 출혈경쟁에 지친 모습이다. 일부 업체는 적자를 기록하는 등 불황의 그늘이 예사롭지 않다.

더이상 출혈을 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1998년 말부터 벌여온 할인경쟁이 일단 휴전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가격할인 행사를 해봤자 매출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치킨 업계에서는 KFC가 올 들어 할인행사를 중단하자 경쟁업체인 파파이스도 샐러드 등 일부 제품을 제외하곤 할인행사를 하지 않고 있다. 햄버거 시장에서는 3년 넘게 할인행사를 주도해 온 한국 맥도날드가 이달 들어 가격할인을 중단하자 라이벌인 롯데리아도 굳이 앞장서서 할인행사를 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으로 물러섰다.

◇주춤해진 '할인 마케팅'=업체들 간의 본격적인 할인경쟁이 시작된 것은 98년 12월. 맥도날드가 한국 진출 10주년을 기념해 두달간 햄버거를 10년 전 가격으로 판매하면서부터다. 당시 맥도날드는 1천원짜리 레귤러 햄버거를 7백50원에,1천3백원짜리 치즈버거를 9백원에 판매했다.

그러자 롯데리아는 같은 해 10월 1천3백원짜리 새우버거와 1천5백원짜리 데리버거를 1천원씩에 판매했다. 이후 두 업체는 매월 품목을 바꿔가며 할인행사를 했고, 경쟁업체인 버거킹도 싸움에 가세했다.

치킨이 주력인 KFC·파파이스도 매월 또는 두세달에 한번씩 품목을 바꿔가며 할인판매에 나섰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제값 주고 햄버거 먹으면 바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바뀌고 있다. KFC가 "가격할인 경쟁은 무의미하다"며 물러서자 파파이스·버거킹도 할인행사를 지난해보다 절반 이상 줄였다.

KFC 마케팅팀 정수연 부장은 "두해 전만 해도 가격을 낮추면 매출액이 10% 이상 늘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매출증가 효과가 거의 없다"며 "장기간 할인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에 고객들이 싼 가격에 무감각해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격인하를 계속 실시할 경우,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아예 고객이 외면해 버리는 일본의 패스트푸드 업계처럼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맥도날드의 상황도 비슷하다. 2000년 12월 1천1백원 하던 레귤러 햄버거를 5백원에 판매하자 전체 햄버거 판매에서 레귤러의 비중이 두배 이상 높아졌다.

그러나 지난 5월 똑같은 행사에선 레귤러 판매가 소폭 느는 데 그쳤다. 지난 4월 실시한 '한개 더 사면 하나는 50% 할인'행사의 매출 증대 효과도 크지 않았던 것으로 회사측은 분석했다. 이에 따라 맥도날드는 앞으로 50% 할인과 같은 대대적인 할인행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일부 품목에 한해 제한적인 할인행사만 할 예정이다.

가격할인의 효과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은 회사별 매출에서도 드러난다. 롯데리아의 경우 매장수가 지난해 상반기 6백50개에서 올 상반기에는 7백90개로 22% 늘었지만 매출은 14% 느는 데 그쳤다.

맥도날드는 같은 기간에 매장수가 2백89개에서 3백41개로 18% 증가했는 데도 매출은 8%만 늘었다. 지난해까지 업체마다 매출이 20% 이상씩 늘던 호황은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부 업체는 올 상반기에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급화로 승부='패스트푸드는 싼 맛에 먹는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제품.매장의 고급화에 주력하고 있다.

롯데리아는 2천6백원짜리 햄버거 '크랩(게)버거'를 출시하면서 '명품 버거'란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한다. 이는 지금까지 롯데리아가 내놓은 제품 중 가장 비싼 가격이다.

롯데리아는 이달 말까지 명품 페스티벌을 열어 크랩버거를 사는 고객에게 스크래치 카드를 증정해 당첨자에게 페라가모.프라다.구찌 등 해외 유명 브랜드의 핸드백.지갑.향수 등을 1천4백여명에게 줄 예정이다.

버거킹은 와퍼 햄버거를 고급화한 '와퍼 업그레이드'를 지난달 내놓았다. 가격은 기존의 와퍼와 같지만 금박 포장지를 사용하고, 빵.고기 등 재료를 고급으로 썼다.

KFC는 다음달에 기존 제품보다 가격이 10% 가량 비싼 프리미엄 치킨을 출시한다. 파파이스는 닭 한마리에 두 조각 정도만 나오는 안심살을 튀겨낸 휭거휠레를 새로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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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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