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7호선 '아찔한 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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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하철 화마(火魔)는 새해 첫 출근길 시민들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그러나 기관사와 종합사령실 간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역무소가 승객들에게 제대로 위급 상황을 알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등 '인재(人災)'가 될 뻔한 불씨는 여전히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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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7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공사는 화재가 난 뒤 홈페이지를 통해 "전동차 정차 중 차량 하부에서 연기가 발생해 승객을 하차시킨 뒤 온수역으로 회송하여 조치 중입니다. 열차 정시 운행과 안전을 위해 철저히 점검하고 있지만 열차가 지연되어 사과드립니다"라고 밝혀 사고 원인이 방화라는 사실을 즉각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오전 7시13분 철산역

최근 이사한 새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 7호선 7017호 전동차의 일곱번째 객차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윤모(67.여.경기도 부천시)씨는 "다음 정거장은 철산역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눈을 떴다. 이때 옆 객차에서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건너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았다.

"170㎝정도의 키에 빨간색 등산 배낭을 메고 검은색 바지를 입었어요. 노란 봉투에 우유 갑 같은 걸 들고 있었어요."

50대 남자는 신문 뭉치를 좌석 옆에 놓았다. 신문에서는 물 같은 것이 흘렀다.

전동차가 철산역에 도착하려는 순간 졸고 있던 윤씨는 "펑"하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주위 사람들이 "할머니 머리에 불이 붙었어요"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손으로 머리를 쳤다.

전동차 밖으로 나와 역사 위로 대피하면서 머리와 오른손에 붙은 불은 껐지만 머리카락 절반 이상이 타버렸고 오른손에 화상을 입었다. 같은 객차와 옆 객차에 탔던 승객들도 황급히 대피했다.

하지만 다른 객차 승객들은 화재 사실을 미처 몰랐고 전동차는 광명사거리역을 향해 출발했다.

#오전 7시19분 광명사거리역

오전 7시19분 전동차는 광명사거리역에 도착했다. 전동차가 들어오자 역무원과 공익요원 등 3명이 소화기를 들고 전동차로 진입해 불을 껐다. 철산역에서 미처 내리지 못한 나머지 승객 60여명은 모두 대피했다. 그러나 화재 소식을 미처 알지 못한 일부 시민은 전동차를 탔다가 연기를 보고 다시 내리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화재 진압을 위해 전동차가 서 있는 상태에서 반대 방향 전동차의 진입을 막았어야 하는데도 전동차 한대가 지나갔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다른 전동차의 진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셈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의 경우 반대 방향에서 들어온 전동차에서 더욱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섬뜩한 순간이었다.

#오전 7시31분 온수역

온수역에서 강남구청역까지 7호선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이화준씨는 오전 7시30분 온수역에 도착했다. 매표소 부근은 뿌연 연기와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시민들은 모두 불안한 표정이었다. 조금 후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현재 이상이 없으므로 안심하고 승차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30초 뒤 갑자기 승강장 한쪽에서 "대피하십시오"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객들은 당황해서 뛰기 시작했다. 온수역 한쪽 끝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씨는 "'안심하라'고 했다가 '대피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그나마 한명이 부상한 것이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특히 이날 사고가 난 전동차는 의자와 바닥이 불에 잘 타는 '구형'전동차였다. 7호선 전동차 496량 중 256량은 불연재로 교체됐으나 하필 이 전동차는 교체 대기 중이었다. 신형 객차에 설치되는 화재 감지장치도 없었다.

수도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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