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이라크戰 불참"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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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의 대(對)이라크 공격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무성한 가운데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사진) 총리가 이라크 공격 불참을 선언하고, 영국 종교계가 대거 반전(反戰) 서명에 들어가는 등 국제사회의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독일의 반발과 국제적 반대 확산=슈뢰더 독일 총리는 5일 하노버에서 행한 선거유세에서 "독일은 미국 주도로 이뤄지는 이라크 공격에는 어떠한 형태로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슈뢰더 총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약탈이 '독일의 길'은 아니다"라고 역설하면서 "미국은 더 이상 우리의 모범이 아니다"라고 천명했다.

슈뢰더 총리는 이어 "유엔 결정과 관계없이 전쟁에는 불참할 것"이라며 "걸프전 때 헬무트 콜 정권이 전쟁비용을 지원한 것과 같은 '수표책 외교'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걸프전 당시 독일은 65억5천만달러의 전비를 지원했다.

독일 언론은 "슈뢰더 총리의 이날 선언은 9·11 테러 직후 밝힌 미국에 대한 '무제한 연대'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유엔 결의를 전제로 이라크 공격을 지지해왔던 그가 돌연 군사행동을 반대한 이유는 다음달 22일 실시될 총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6일 "현 상황에서 이라크 공격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엔 무기사찰단의 이라크 복귀를 통해 국제사회가 이라크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리 페데토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스 블릭스 유엔 무기사찰단장을 파견해 달라는 이라크의 제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찰 재개를 위한 대화를 거부한 미국을 비판하는 자세다.이와 관련, 이라크의 나지 사브리 외무장관은 이달 말 미국의 공격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한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영국 종교계 반전 서명=영국 성공회의 수장인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 지명자 등 영국의 성직자 2천5백여명이 유엔 승인없는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고 BBC가 이날 보도했다. BBC는 영국의 가톨릭평화운동단체인 '팍스 크리스티'가 주도한 서명을 통해 "유엔 헌장 및 가톨릭의 도덕 규범을 위반해 전쟁을 고려하는 최강국들의 행위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는 내용의 탄원서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게 전달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도 최근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영국인 응답자의 91%가 이라크 공격에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내 여론 악화=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도 지난 4일 사설에서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필요하다"며 "군사공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같은 날 사설에서 "후세인 제거를 위한 군사작전이 주요 동맹국의 지원을 얻지 못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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