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더멘털'이 도대체 뭐길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며 경기는 회복 중이다."(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지난달 16일 상원 금융위원회 증언)

"중요한 것은 경제 활력을 위한 펀더멘털이 존재함을 깨닫는 것이다."(조지 부시 미 대통령, 지난달 17일 기자회견)

"금융시장의 신뢰는 TV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경제 펀더멘털에서 비롯된다."(폴 오닐 미 재무장관, 지난 3일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

미국 주식시장이 지난 6월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자 미국 정치·경제의 지도자들은 마치 주문이라도 외듯 '펀더멘털'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국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 경제 관료들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강변하다 환란을 맞았다.

도대체 경제의 펀더멘털이 뭐길래 경제가 어려워지면 정책 책임자들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걸까.

경제분야에서 펀터멘털은 경제의 기초여건을 뜻한다.

그러나 미국 금융 책임자들이 펀더멘털의 건전성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주식시장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펀더멘털이란 용어가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펀더멘털, 과연 양호한가=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전문가들도 미국의 펀더멘털이 양호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미국은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예상보다 밑돌긴 했지만 성장을 계속했고 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아직은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 주식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경기는 꾸준히 상승하는 등 경제가 전반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불거진 회계부정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이에 대한 방지 법안을 만드는 등 정책적·제도적 대응이 건전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펀더멘털의 다른 한축을 이루는 재정·경상수지의 적자가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5일 이사회 보고서에서 "미 경제전망이 아직까지는 전반적으로 좋으나 재정적자가 크게 늘고 있다"며 "미국의 성장 전망을 하향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IMF는 이에 앞서 미국이 올해 2.3%, 내년에는 3.4%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시장의 신뢰가 관건=미국의 정책 당국자들이 펀더멘털의 건전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주가는 정반대로 반응하고 있다. 아무리 펀더멘털이 좋다고 말해도 시장이 이를 믿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8,000선을 위협하고 있고 나스닥지수는 97년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고평가된 주가의 거품이 빠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회계부정 등 투자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요소들이 등장함으로써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됐다는 것이다. 이 마당에 펀더멘털에 대한 강조는 심리적인 수사학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 상무는 "미국 경제가 당장 결딴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경제의 펀더멘털은 양호하지만 주가가 계속 곤두박질친다면 펀더멘털의 건전성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펀더멘털의 건전성은 그에 대한 시장의 신뢰 여부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