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또 하나의 식량,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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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날이면 약장수 구경하느라 모친 치마꼬리를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여름날에는 영사막에 비 내리는 노천영화가 장터에서 돌아갔다. 영화 보러 가는 허락을 얻기 위해 평소보다 바지런을 떨며 참깨를 털고 꼴을 베어 오는 아들을 보고 모친은 "고것이 니 밥인갑제"하고 푸념 섞인 핀잔으로 저녁 시간을 내어주곤 했다. 배 안 부르는 밥에 대한 기갈과 공복을 억누르지 못하는 자식 처지를 딱하게 여긴 것이리라.

흔히들 문화시대라고 한다. 이 말 속에는 문화가 밥을 먹여주는 시절이 됐다는 뜻이 상당부분 포함된 줄 안다. 일본에서 일고 있는 '욘사마 현상'이 경제효과로는 자동차 1만3000대를 판 것과 맞먹는다는 계산법이 동원되고 있는 세상이다. 거기서 파생하는 효과는 그뿐 아닐 터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곧이곧대로 문화가 풍성해지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문화산업과 문화사회는 서로 연관돼 있되, 결코 같은 것은 아닌 까닭이다. 문화상품 소비와 향유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나아가 문화 독점과 균등한 수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요컨대 문화시장은 있되 공공문화는 여전히 빈곤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시아를 들끓게 하고 있는 한류만 하더라도 온전한 발전적 모델을 갖추려면 동아시아 문화 교류와 다양성으로 이내 접근돼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는 한때 유행으로 끝나 문화적인 측면은 물론 시장논리도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말 게 분명하다. 정책 당국에서도 이는 반드시 외교통상부나 교육인적자원부와 연계된 사업구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지난해 이라크에서 김선일씨 사건이 일어난 뒤 정부의 외교적 무능과 더불어 아랍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질타당한 적이 있다. 일찍이 중동은 한국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에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문화적인 의미에서는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은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고구려 늑탈 공작인 동북공정에 대한 남북 공동 대응을 포함한 통일문화 사업도 새해 중요한 화두로 삼아야 할 터이다. 듣기에 북측 지역 고구려 고분벽화 공동 발굴도 민간 주도로 타진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업을 안고 가야 하는 참여정부의 문화정책과 집행은 과거에 비해 조금 나아진 측면은 있으나 여전히 추상적.관(官) 주도적이며 지속적 의지와 시민참여에 대한 형식적 안배 등으로 봐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지우지 못하게끔 하고 있다.

어쨌든 오늘날처럼 문화 또는 문화인이 대접받는 시대는 실로 없었던 듯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는 엔터테인먼트라고 하는 대중 연예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시장의 영향력이 곧 문화 일반으로 오해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처럼 산업논리가 문화 전반을 압도하면서 창작생산자들이 당면한 현실로부터 급속하게 멀어지고 있다는 것은 서글픈 대목이다.

가령 노숙자가 하루에 한 명꼴로 죽어 나간다는 발표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회적 그늘에 대한 창작자들의 관심과 활동은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이는 기록과 치유라는 측면에서 문화 역할에 대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더불어 문화적 빈곤과 소수자를 배려하는 문화적 사회안전망에 대한 현실적 조치가 하루바삐 실행돼야 할 터이다. 이는 부의 세습이 교양과 문화의 독점적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 사회통합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늦출 수 없는 과제임에 틀림없다.

스크린쿼터에서 볼 수 있듯 영화만이 아니라 문화는 그 구성원들에게 또 하나의 식량임에 틀림없다. 새해는 이 식량의 확충과 함께 그 혜택이 고르게 돌아가게끔 기초를 닦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서해성 소설가·한신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