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하면 우울증, 발병 3개월 내 치료해야 효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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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사격장이나 공사장·나이트클럽 등에서 큰 소리를 들은 직후 귀가 먹먹하면서 이상한 소리가 날 때가 있다.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닌 귓속이나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이상 음감으로 이명(耳鳴)이라 한다. 소리의 형태는 다양하다. 대개 ‘찡’ ‘윙’ ‘쏴’ 하는 식의 단순음이 들린다. 기계나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맥박이 뛰는 소리나 벌레 우는 소리를 듣는다. 일시적인 이명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반복돼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있다면 이명증으로 분류된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김춘자(80·여)씨. 귀에서 자꾸 인터폰 울리는 소리가 난다. 주변이 아무리 조용해도 귓속에선 이상한 소음이 반복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신경이 쓰여 성격이 예민해졌다. 가족들이 텔레비전을 보겠다고 볼륨이라도 키우면 머리까지 지끈거린다. 절로 신경질이 나지만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으니 서럽고 답답하다. 이명을 치료하기 위해 여기저기 병원도 많이 다녔다. 몇 개월간 노력했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달팽이관 손상 때 소리 들려
이명은 전체 인구의 17%에서 나타날 만큼 흔하다. 이 중 5% 정도가 병원을 찾을 만큼 심한 이명증을 호소한다. 여러 가지 치료가 시도되고 있지만 대부분 성공률이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명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직까지 이명이 생기는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까닭이다. 을지병원 이명클리닉 심현준 교수는 “소음에 많이 노출됐거나 나이가 들면 생기는 난청과 이명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통해 달팽이관의 손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고 말했다.

달팽이관은 내이(속귀)에서 달팽이의 껍데기처럼 동그랗게 말려있는 관이다. 소리의 진동에 따라 달팽이관 속을 채우고 있는 림프액이 움직이면서 섬모를 흔든다. 이렇게 자극된 청각세포는 청신경을 거쳐 대뇌로 전달돼 소리를 판단한다. 이명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달팽이관 손상은 소음이나 노화, 이독성 약물, 바이러스 감염, 머리 외상, 달팽이관으로 공급되는 혈관의 장애 등으로 일어난다. 이명을 일으키는 약은 아스피린·스트렙토마이신·네오마이신·카나마이신·푸로세마이드 등이다(대한이비인후과학회).

경희의료원 이비인후과 여승근 교수는 “이명은 소음성 난청과 관련이 깊으며 예방법도 같다”면서 “노화 현상은 노력으로 막기 어렵지만 소음을 조절하는 것은 가능하다. 시끄러운 장소에 가지 않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크게 듣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음에 대한 민감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총성이나 폭발음이 아닌 일정 강도 이상의 소음만으로도 청각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음압이 85㏈(데시벨) 이상인 소음은 귀에 해롭다. 장시간 노출되면 달팽이관이 손상될 수 있다. 일상적인 대화는 60㏈ 정도며 공기드릴은 100㏈, 제트기 엔진이나 총소리는 140㏈이다. 흔히 사용하는 MP3 플레이어의 볼륨을 최대한 높이면 100㏈ 수준으로 이 상태로 매일 15분씩 음악을 들으면 난청과 이명이 나타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1억2000만 명이 소음으로 인해 각종 귓병을 앓고 있다. 음악가나 항공기 조종사·공사현장 노동자 등 직업상 소음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면, 반드시 귀마개를 하고 작업 중간중간 소음을 피해 휴식을 취한다.

사람따라 작은 소리에 귀 손상 되기도
귀에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소리가 들어온다. 귀 주변을 지나는 혈관에서 나는 소리, 귀와 목 주변 근육이 수축하는 소리, 턱 관절이 움직이는 소리 등도 그중 하나다. 들리는 모든 소리를 대뇌가 인식한다면 상당히 시끄럽고 산만할 것이다. 다행히 대뇌피질 바로 밑에는 소리의 가치정보를 선별하는 필터(subcortex·대뇌피질하 중추신경계)가 있어 이명과 같은 의미 없는 소리를 거른다. 그러나 이 단계에 문제가 생기면 이명을 인식하게 된다. 평소 대뇌에서 인식하지 못했던 소리가 어느 날부터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심 교수는 “우연히 필터를 뚫고 강렬하게 인식된 소리가 대뇌의 변연계에서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기억되며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명은 어떤 질환이나 병적인 상태라기보다 통증과 같이 느껴지는 하나의 증상”이라고 했다.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면 곧바로 치료하는 것이 좋다. 발생 3개월 이내의 급성기 이명은 그나마 완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급성기에는 고막 내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는다. 을지병원 이명클리닉은 최근 6개월간 급성기 이명 환자 154명을 대상으로 치료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70.8%(109명)에서 증상이 호전되었으며 18.2%(28명)는 이명이 완전히 사라졌다. 심현준 교수는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라며 “증상이 나타난 초기에 적극적으로 달팽이관 손상을 치료하면 만성 이명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달팽이관이 손상된 채로 방치되면 병변이 달팽이관을 넘어 척수와 뇌에 위치한 청각중추까지 퍼진다. 이때부터는 치료가 복잡해지고 오래 걸린다.

이명을 없애는 획기적인 치료법은 없다. 대신 이명에 익숙해져서 스트레스와 불편이 덜하도록 한다. 첫째는 보청기를 끼는 방법이다. 주변 소음을 크게 해 이명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 둘째는 소리치료로 불쾌한 이명을 다른 소리로 바꿔준다. 예컨대 귀에서 ‘삐’ 소리가 계속될 때 파도소리를 같이 들려주면 일정한 볼륨에서 두 가지 소리가 섞인다. 이때부터 이명은 ‘삐’가 아닌 다른 소리로 들리게 된다.

최근에는 이명을 습관화시켜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명 재훈련 치료를 주로 하는데 10명 중 8명에서 증상이 호전된다.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이준호 교수는 “평소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명에 대한 머릿속 신경회로를 바꾸는 것”이라며 “1년 반 정도 치료를 해야 하므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꾸준히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도 크다. 이명 환자의 10~20%에서 불면증이나 우울증 같은 자율신경계 반응이 나타난다. 이 교수는 “이명이 들린다고 자꾸 불안해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면 이명이 심해져 더 괴로워진다”며 “정신과 상담을 받거나 관련 약을 처방받으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주연 기자 g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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