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 레슨실 ③ 트럼펫 안희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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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짜리 방 중 하나가 레슨실. 다른 두개는 연습실이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학생 대여섯 명이 연습실에서 레슨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와서 미리 ‘입을 푸는’ 모습이 이채롭다. 연습실 문이 열리고 안씨가 학생 이름을 부른다. “다음 레슨 누구 할래.”

KBS 교향악단 트럼펫 수석 안희찬씨의 레슨실은 시끌벅적하다. 그는 연주자들 사이에서 ‘모임의 단골 사회자’로 통할 정도로 유쾌하고 호탕하다. [안성식 기자]

◆레슨을 끌고가는 유머와 칭찬=동그란 안경 밑으로 콧수염을 기르고 거센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스승을 학생들은 친한 친구처럼 좋아한다. 안씨는 1991년 코리안심포니 단원으로 국내 오케스트라 연주를 시작해 2003년 KBS 교향악단 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해 140~150회 무대에 설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는, 한국의 대표적 트럼페티스트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레슨하며 장난을 치고, 사소한 고민도 들어주는 선생님이다.

“숙제 해왔어? 안 해왔어? 괜히 내줬어~.” TV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흉내내는 선생님. 그 앞에서 학생들이 긴장을 풀었다. 안씨는 “일부러 학생들을 웃기려 노력한다”고 했다. “질문 때문이에요. 학생들 마음이 편해야 음악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래야 저도 스스로 잘 가르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요. 마음이 편해지는 데에는 유머 만한 게 없죠.”

레슨을 끌고가는 두 개의 주제는 유머와 칭찬이다. “지난 시간보다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너 혹시 천재 아니니?”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 이 부분을 더 연습할 수 있었는데 못했어요.” 훈계보다 칭찬이 더 센 효과를 발휘하는 현장이다.

“금관 악기를 부는 데 자신감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꾸중보다는 칭찬이 잠재력을 끌어냅니다.” 안씨의 레슨실에는 여러 종류의 트럼펫 외에도 긴 막대가 있다. “많은 사람이 이걸 보고 회초리냐고 물어요. 놀랐어요. 저는 회초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연주할 때 박자 맞춰주는 막대인데 말이죠.”

◆소 끌다 트럼펫에 반해=안씨는 경남 함안 출신이다. 학교가 파하면 집에 돌아와 소를 끌고 농사짓던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들은 소리에 반해 트럼펫을 시작했다. “지방 도시 뿐 아니라 한국 전체가 금관 악기의 불모지였어요. 제대로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죠.” 직접 자료를 찾고, 음반을 구해가며 악기를 불었다. 이 기억 때문일까. 그는 지금도 트럼펫의 대중화를 사명으로 여긴다. 얼굴 모르는 학생들이 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남기는 질문에 친절히 답을 해준다. 산골 마을의 학교에 찾아가 트럼펫 소리를 들려주는 일도 꾸준히 하고 있다. 안씨의 레슨은 이렇게 레슨실 밖에서도 계속된다.

연습실에서 레슨을 기다리던 곽재호(17) 학생은 “트럼펫 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 연주는 거의 ‘교과서’”라고 말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간단한 오디션까지 봐야할 정도”라고 한다. 안씨는 “트럼펫을 하려면 치아는 볼록 렌즈 같아야 하고 입술은 평평해야 돼요. 첫 소리 내기조차 힘든 악기라, 신체 조건이 나쁘면 평생 고생하죠”라고 했다. 그가 오디션을 봐서 학생을 ‘가려 받는’ 이유다.

최근에는 한주에 8시간 정도로 레슨 시간을 줄였다. 네델란드 로테르담에서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왔을 때는 일주일에 25시간까지 레슨을 했던 적도 있다. “이제 그 1세대 학생들이 오케스트라에 속속 들어가서 저와 같이 연주하고 있어요.” 경쟁과 스트레스 대신 유머와 즐거움으로 거대한 금속성 소리를 함께 즐기는 그의 꿈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안희찬의 원포인트 레슨

① 트럼펫에 걸맞은 낙천적 마음을 가지라.

② 다른 악기의 소리를 떠올리며 연주하라.

③ 연습할 때 실제로 소리 내 노래하라.

④ 관현악 작품을 가능한 한 많이 알아야 한다.

⑤ 리듬·호흡 등 기본을 늘 복습하라.



안희찬의 제자들

KBS 교향악단 부수석, 코리안 심포니 부수석, 수원시립교향악단 수석·부수석, 경기도립교향악단 부수석. 국내 대부분 교향악단의 트럼펫 수석·부수석 자리에 안희찬씨의 제자들이 앉아있다. 외국에서는 핀란드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부수석이 그의 제자다. 안씨가 만 19년동안 기른 제자들이다.

“좋은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것이 많은 트럼펫 연주자들의 꿈이죠.” 안씨는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 연주자가 바뀌면 지휘자 바뀐 것만큼이나 음색이 확 달라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오케스트라 연주를 가르친다. 그만큼 트럼펫이 중요하고 가르치고 배우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그는 ‘합주 레슨’을 중시한다. 제자들과 함께 여름이면 음악 캠프를 열어 ‘연주 합숙’을 하고, 같이 무대에도 자주 선다. 안씨 스스로 경험한 오케스트라에서의 20년이 이같은 ‘앙상블 레슨’의 원동력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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