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마늘, 그리고 허송세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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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해안 곳곳의 지도가 일직선으로 크게 바뀔 뻔한 적이 있다.

1986년 여름 어느 날. 이제는 고인이 된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회장이 당시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장 방에 들어섰다. 서해안 9곳과 남해안 1곳 등 10곳에 대규모 간척사업을 일으키는 '국가적 대(大)역사(役事)' 구상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국토도 넓히고 쌀 생산도 획기적으로 늘리자는 것이 골자였다.

이미 전두환(全斗煥) 당시 대통령도 현대의 구상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 통 큰 鄭회장답게 사업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거의 일직선 해안선을 만든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타당성 검토에 들어가있던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의 의견은 부정적이었다. 쌀 농사로는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때 정부 안에서 최초로 나왔던 분석이 바로 '앞으로는 쌀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鄭회장은 그날 정책조정국장 방을 나와 돌아가며 대동했던 측근에게 "똑똑한 공무원도 있네"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정부는 10곳의 농지간척 대신 시화(始華)지구 한곳만 메우기로 결론을 냈다.

그로부터 16년.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역대 정부가 줄곧 농민들에게 '이제 쌀 농사로는 점점 더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알리며 일관된 정책을 펴왔더라면 우리 농촌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논·밭은 훨씬 더 많이 다른 용도로 쓰여졌을 것이며, 훨씬 더 많은 농가가 진작 정부보조금을 받아 다른 살길을 찾았을 것이다. 올해처럼 쌀이 너무 많이 남아돌아 가을이 오기 전에 서둘러 무려 4백만섬을 사료 등으로 써버려야만 하는 기막힌 일도 없었을 것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밑에서 2년6개월 동안 최장수 장관을 지낸 김성훈(金成勳) 전 농림부 장관은 쌀 생산을 줄이면 안된다고 주장하던 대표적 학자였다. 식량안보론을 내세웠고 쌀 개방만은 절대 안된다고 했다. 국무위원이 되고 나서도 자유무역협정(FTA)이든 뭐든 농업 개방이 거론되면 가로막고 나섰다.

보다 못한 한 고위 인사가 어느날 큰 결심을 하고 金대통령을 독대했다.

농민들을 위해서나 국익을 위해서나 크게 잘못 가고 있는 농업정책, 중국 등과의 통상마찰 가능성, 국무회의에서의 불협화음 등을 소상히 보고했다.

DJ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 수긍했다. 그러나 막상 보고를 다 듣고 난 DJ는 이랬다고 한다."그런데 농림부 장관에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돼."

쌀은 그렇게 문제가 쌓여왔고, 마늘은 이렇게 문제가 되었다.

이제 와서 16년 동안 쌀을 싸고 돈 역대 정권에 고맙다고 할 농민은 없다. 마찬가지로 1조8천억원을 지원해주겠다는 정부를 믿고 마늘 농사에 대대로 매달릴 농가도 없다.

쌀 문제에서 보듯 마늘 문제의 핵심은 '마늘 대신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를 중국과 마늘 분쟁을 타결한 2년 전부터 함께 찾는 것이었지, 그때 그때 농가를 싸고 도는 것이 아니었다.

왜 협상 내용을 감추었느냐고 하지만, 당시의 보도자료를 보면 수입 마늘에 대한 긴급관세 부과기간이 '3년'으로 명시돼 있다.

'3년 후에 끝난다'는 적극적 문구 대신 '부과 기간 3년'이라는 소극적 문구를 쓴 셈인데, 당시 언론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여기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림부만은 이걸 챙겼어야 했다.

일단 통상교섭본부가 급한 불을 껐으면, 농림부는 바로 마늘 농가가 먹고 살 대책을 찾았어야 옳다. 이제 와서 "우린 몰랐다"할 처지가 못된다.

마늘 협상을 놓고 농민을 속였느니 안속였느니 하지만, 어느 게 과연 농민을 속인 것인가.

쌀 16년, 마늘 2년의 허송세월이야말로 농민을 가장 확실히 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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