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항의 공권력'날'이 안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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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27일 오후 11시50분쯤 서울 관악구 봉천네거리 부근 음식점에서 손님과 주인 사이에 음식값을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주인은 결국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관이 출동했다.

술에 취한 채 "서비스가 나빠 술값 1만5천원을 못내겠다"고 우기는 손님에게 경찰관이 신분증을 요구했으나 손님은 "경찰관도 주인과 한 통속"이라며 막무가내로 버텼다.

손님과 경찰관 사이의 실랑이를 보다 못한 음식점 주인이 "음식값을 받지 않겠다"면서 소동은 끝났다.

출동했던 경찰관은 "구경하던 시민들이 저런 사람을 왜 안잡아 가느냐고 했지만 현행 법규상 별 도리가 없다"고 털어놨다.

공권력이 흔들리고 있다.

음주운전 단속 현장에선 예외없이 경찰관에 항의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높고 교통법규 위반자를 단속하면 "왜 나만 잡느냐"는 항의가 비일비재하다.

경찰청 수사과장 김중확(金重確·사시 26회)총경의 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 논문에 따르면 경찰관 5백3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노상방뇨나 교통위반자에 대한 단속 때 시비를 걸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41.6%가 "참거나 귀가를 설득할 수밖에 없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경범죄 처벌법을 위반해 범칙금을 통고받은 사람 가운데 범칙금을 내지 않고 즉심에도 응하지 않은 비율이 1999년의 9.4%에서 2000년엔 17.9%로 높아졌다.

서울 관악경찰서 봉천7파출소 소속 박종화(朴鍾和)순경은 "싸우는 현장에 출동하면 술에 취한 사람이 오히려 경찰관을 싸움 상대로 보고 시비를 거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밤 서울 사당동에선 주먹다짐을 하던 사람을 경찰관이 연행하려하자 시민 1백여명이 격렬하게 항의하며 순찰차를 파손한 일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공권력 약화현상이 현행 법체계의 미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상현(李相賢)교수는 "공권력 경시 풍조가 만연해 법 질서가 해이해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피의자를 일단 체포한 후 즉시 법관에게 인계해 심사하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金총경도 논문에서 "현행 형사소송법상 경미한 범죄의 경우 현행범이라도 주거가 분명하지 않을 때만 체포할 수 있어 공권력 집행을 어렵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보니 경미한 범죄자에게 처벌이 무거운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할 수밖에 없어 오히려 '과잉 대응'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반면 과거 권위주의 시대 공권력이 왜곡 집행된 데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누적돼 이런 결과를 낳은 만큼 제도 보완뿐 아니라 공권력 스스로의 권위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강주안·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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