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 광복 기억하자" 45년 창사 … 이름도 '을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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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해 10월 말 경기도 파주북시티. 한국출판의 심장부인 이곳에서 출판인들은 뜻깊은 행사를 열었다. 단지 안의 가장 긴 다리를 '은석교'라고 명명하고 준공식을 한 것이다. '은석'은 을유문화사 정진숙 회장의 아호 은석(隱石)에서 따왔다. 이 다리 준공은 현역 최고령의 선배에 대한 예우, 그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

해방되던 해 30대 초반 청년 넷이 모여 "을유년 감격을 기억하자"는 뜻에 따라 만들어진 한 출판사가 60년간 민족문화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공적에 대한 후배들의 깍듯한 경의의 표시였다. 을유 창립은 동인 형태였지만, 한국전쟁 이후 혼자 을유 간판을 지켜온 정 회장의 손을 거쳐 지금까지 나온 책 5000여권은 그 자체가 한국어.한국문화 정수로 평가된다.

1946년 2월 선보인 첫 책'가정글씨체첩'에 이어 60,70년대에 탄생시킨 '세계교양사상전집' '한국학백과사전' '세계문학전집' 등은 한 출판사 저작목록이자, 현대사의 문화밑천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를 이끈 정 회장은 '출판운동가'라는 평가(이기웅 파주북시티문화재단 이사장)를 받는다. 단행본 흐름이 상업출판.기획출판으로 돌아선 80년대 이후와는 사뭇 다른 맥락이다.

외솔 최현배가 만든 정음사와 함께 7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을유가 주춤했던 것은 달라진 출판의 흐름 탓도 있지만 정 회장이 출판금고 설립, 출판협회장(14년간)을 맡았던 사정과도 무관치 않다. 지난 60년 성과에도 30대 이후 세대의 기억에서 잠시 잊혔던 을유는 2000년 이후 정회장의 손자가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을유에 새 봄이 왔다"(동서문화사 고정일, 문예출판사 전병석 대표)는 평가도 나온다.

정상준 상무는 영화배급.광고업무 등 다른 미디어산업에서 6년간 종사한 뒤 2000년 출판에 합류한 인물. 그가 간여했던 영화 '러브레터''접속''8월의 크리스마스'의 감각으로 조율하는 새 을유는 다매체.다채널 시대에 걸맞은 지식산업 모델 제시 역할이 기대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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