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이라크를 공격하려 하나요 核등 대량살상무기 위험 막자는게 명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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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요즘 신문·방송을 보면 매일같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와요. 미국은 도대체 왜 이라크를 공격하려 하나요.

한마디로 미국이 보기에 자국민 2천여명을 숨지게 한 9·11 테러처럼 끔찍한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큰 이라크를 먼저 공격해서 그같은 위험을 사전에 뿌리뽑겠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라크가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화학·생물무기 등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WMD)를 만들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이들 무기로 미국을 직접 공격하거나,9·11 테러를 벌인 알 카에다 같은 테러조직에 무기를 넘겨줘 간접 공격할 속셈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올초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내쫓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즉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란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려 대량살상무기를 만들 의사가 없는 온건·친미 정권을 이라크에 세우려는 작전'이라고 요약할 수 있어요.

이라크 공격은 9·11 테러 이후 달라진 미국의 대외정책과도 관련이 있어요. 그 이전까지 미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나라라 해도 먼저 공격해오지 않는 한 협상으로 위협 요인을 없앤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나 9·11 테러로 엄청난 재난을 당하자 미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큰 나라나 테러조직에 대해선 선제공격을 통해 위험을 예방한다는 방향으로 급선회했습니다. 그 첫번째 대상이 이라크인거죠.

2.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명분이 불분명해 다른 속셈이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요. 미국과 이라크가 처음 싸운 1991년 걸프전 때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쫓아낸다'는 분명한 명분이 있었어요. 그러나 이번 경우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고 있다고만 말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무기를 얼마나 만들었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어요. 또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었더라도 당장 미국을 공격할 계획이 있는지 밝혀내야 하는데 이것도 못했고요.

이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유엔의 무기사찰을 거부하고▶알 카에다 같은 테러집단을 지원하는 등 국제법을 어기고 있다는 점을 공격의 또다른 명분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유엔 사찰 거부는 미국이 아닌 유엔이 나서서 처리할 문제고, 이라크가 알 카에다를 지원했다는 주장도 분명한 증거가 없어 명분이라기엔 빈약합니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을 결정한 배경은 다른 데 있다는 비판이 미국 내에서 나오고 있어요. 국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최근 잇따라 터진 회계부정 비리와 금융 위기 등 국내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는 한편 중동에서 사우디 아라비아 다음으로 많은 석유 매장량(확인된 양만 7백50억배럴)을 자랑하는 이라크로부터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받는 기반을 마련하려는 의도라는 거죠.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후세인 대통령을 제거해 이라크의 석유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되면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나 이란 등 다른 산유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어 중동에서 더욱 힘이 세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요.

3.미국은 언제쯤 이라크를 공격할까요.

요즘 들어 미국은 가급적 신속히 직접 공격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 같아요. 며칠 전 부시 대통령은 '곧' 공격한다는 신호를 우방들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고, 미 육·해·공군은 이번주 중 캘리포니아주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합동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랍니다.

이 때문에 일부 미국 언론들은 이르면 8월, 늦어도 올해말 전에 공격이 시작될 것으로 점치고 있어요. 그러나 전쟁은 병력동원이나 무기비축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내년초까지 공격이 늦춰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4.공격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미국이 금방 이길까요.

이라크의 군사력은 미국과는 상대가 안되는 수준입니다(표 참조). 미군은 걸프전 때와 비교가 안될 만큼 강력한 첨단무기를 갖고 있어 승리할 가능성이 대단히 큽니다.

그러나 6개 사단 규모의 강력한 후세인 친위부대가 결사항전 의지를 다지고 있고, 나라를 '침공'한 미군에 대한 이라크 국민들의 저항도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궁지에 몰린 이라크군이 화학무기를 쓸 가능성이 있어 미군의 희생도 작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요. 실제로 이라크군은 88년 쿠르드족 소탕전 때 화학무기인 독가스를 써서 5천여명을 몰살시켰다고 해요.

미국이 이겨 후세인 정권을 쫓아낸 뒤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많아요. 2천7백만명의 이라크 국민은 북부 쿠르드족, 중부 수니파 이슬람교도, 남부 시아파 이슬람교도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 철권통치로 이들을 묶어온 후세인이 없어지면 이라크는 세나라로 찢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만큼 분열상이 심각해요. 따라서 미국이 이들을 한데 묶어 안정된 친미정권을 세우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5.공격을 말리는 나라들은 없나요.

영국을 제외한 유럽연합(EU)과 중국·러시아 등이 모두 반대하고 있어요.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죠. 미국의 공격에 발진기지가 돼줄 이라크 주변국가들도 국민들의 반미감정과 중동정세 악화를 겁내 일제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라크는 미국이 공격하면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자 아랍권의 적대국가인 이스라엘을 보복 공격함으로써 전쟁을 미국·이스라엘 대 아랍권의 구도로 확대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어요. 걸프전 때도 이라크는 이스라엘을 미사일로 공격해 이같은 구도를 만들려 했지만, 미국이 이스라엘을 강력히 말려 전쟁이 확대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이번에 이스라엘이 또 다시 공격을 받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그럴 경우 중동 전체가 전쟁에 휘말릴 수 있게 됩니다. 이를 걱정한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자국 내 미군기지를 절대로 내줄 수 없다고 못박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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