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제2부 薔薇戰爭 제5장 終章 :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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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김양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염장은 어리둥절하였다.

"소인에게 무슨 철천지원수가 따로 있겠습니까."

염장은 머리를 숙이며 말하였다. 그러자 김양이 받아 말하였다.

"그대가 이토록 야심한 밤에 집으로 찾아온 것은 무슨 까닭인가. 또한 그대가 평소에도 방상시의 탈을 쓰고 다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대의 용모를 어둠으로 가리고 탈로 가리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하면 도대체 누가 그대를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오, 죽어도 죽은 목숨이 아닌 귀신으로 만들어 놓았는가."

순간 염장은 김양이 말하는 자신의 철천지원수가 누구를 말하고 있음인가 정확히 알아차렸다.

"그대의 얼굴에 도적이라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묵형을 새김으로써 그대를 살아있는 송장으로 만든 사람이야말로 그대의 철천지원수가 아니겠는가."

염장은 비로소 자신의 주인인 김양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음인가를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떠돌이 백정으로 있을 무렵 자신의 노모가 죽었을 때 찾아와 대신 성대하게 장례를 차려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무주의 도독으로 있을 무렵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직접 얼굴에 새긴 도적이란 두 글자를 벌겋게 달아오른 창칼로 지져 글자를 지움으로써, 노예를 파는 대역죄인에서 부장으로 환골(換骨)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도 염문에서 염장으로 바꾸어 탈태(奪胎)시켜 주지 아니하였던가.

차도살인(借刀殺人).

'남의 힘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주인 김양은 이미 그때부터 언젠가는 장보고를 제거하기 위해서 철천지원수인 자신을 하나의 칼로 빌려 맡아둔 것이 아니었을까.

"마침내."

김양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제 그대가 철천지원수를 갚을 때가 되었소이다."

염장은 묵묵히 주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주인의 이 말은 '장보고를 죽이라'는 지상명령인 것이다.

"그대의 철천지원수가 이젠 온 나라의 철천지원수가 되었소이다."

"…알겠습니다."

염장은 짧게 대답하였다.

"나으리가 소인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명명백백하게 알아듣겠습니다. 이 몸은 살아도 주인의 것이오, 죽어도 주인의 것이니, 마땅히 주인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다만 하나의 조건이 있나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김양이 묻자 염장이 대답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불립호혈 부득호자(不立虎穴 得虎子)'라 하였습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다는 뜻이나이다. 마찬가지로 소인이 철천지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반드시 호랑이굴인 청해진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나이다."

염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장보고를 제거하기 위해서 그를 서라벌로 불러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미 선왕이었던 신무왕으로부터 '감의군사'를 제수 받을 때에도, 또한 대왕마마로부터 '진해장군'을 제수 받을 때에도 장보고는 서라벌에 입경하였으나 그때마다 수백명의 휘하군장들을 대동하고 있었으므로 그를 암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장보고를 죽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호랑이굴인 청해진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염장의 말은 정확한 것이었다.

"그 조건이 무엇인가."

김양이 묻자 염장이 단숨에 대답하였다.

"배훤백의 모가지입니다."

염장은 짧게 대답하였다.

"배훤백의 목을 베어 그 수급을 소금에 절여주옵소서. 그것이 첫번째 조건이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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