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만 좇는 외국인력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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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부가 내놓은 '외국인력제도 개선방안'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 방안의 요체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현재 제조업·건설업·수산업에 한해 실시되고 있는 산업연수제도를 농업과 축산업까지 확대해 적용할 뿐 아니라, 그 도입규모를 대폭 늘린다. 둘째, 식당종업원·가정부·간병인 등의 서비스업에서 외국 국적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취업관리제'를 실시한다. 셋째, 불법체류 사실을 자진 신고한 25만6천명을 내년 3월 말까지 전원 출국 조치하고, 새로운 인력을 도입해 그 공백을 대체한다.

비리 부추길 산업연수제

이 방안은 치명적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이는 당장 폐지해야 할 산업연수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대착오적인 시도다. 산업연수제는 출입국관리법의 '산업연수' 조항에 근거를 둔 것으로, 저개발국에 대한 기술 이전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는 주로 편법으로 운영돼 왔다. 외국인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연수생'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박탈해 낮은 임금을 지급해온 것이다. 명분과 실질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과연 양돈장에서 오물을 치우는 일이 제3세계에 이전할 기술인가?

둘째, 서비스분야 외국인력 '취업관리제'의 실시 방법과 적용 분야 및 대상에 문제가 있다. 우선, 이 제도를 새로운 법률이 아니라 출입국관리법의 '자격외 활동 허가' 조항을 활용해 실시한다는 것이다. 취업은 허용하되 '근로자'로서의 완전한 권리는 부여하지 않겠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왜 정정당당하게 정책을 실시하지 않고 편법만 찾아다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다음, 이 제도의 적용 분야를 서비스업으로 한정하는 합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인력부족률이 높은 제조업·건설업·수산업·농업을 제외한 채 서비스업에만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또 서비스업에 취업한 외국 국적 동포의 체류 기간은 2년으로 산업연수생의 연수와 취업기간 3년보다도 오히려 짧다. 이처럼 현실을 무시한 취업부문과 체류기간 설정은 불법체류를 조장할 소지가 많다.

마지막으로, 외국 국적 동포에게만 이 제도를 적용할 근거가 없다. 같은 민족으로서 그들을 배려한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이 차별대우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과 같은 특별법으로 그들을 포괄하는 시도는 어느 정도 용납될 수 있겠지만, 일반법으로 외국 국적 재외동포에 특혜를 베푸는 정책은 민족차별로 비난받을 것이다.

셋째, 불법체류자를 전원 출국 조치하겠다는 발상은 원론적으로 옳으나, 그들이 자진 출국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집행할 능력이 없으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사면해 몇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출국하도록 하면서, 새로운 외국인력을 도입하는 게 실현 가능성이 큰 방안이다. 다소 완만하고 쉬운 우회로를 무시하고 가파르고 험난한 지름길만 찾는 까닭을 알 수 없다.

강제 출국 집행능력 있나

요컨대 개선방안은 편법으로 얼룩져 있을 뿐 아니라 그 실현 가능성도 매우 작고 세계 사회의 조롱거리가 될 졸작이다. 이 방안은 당장 취소해야 한다.

대안은 멀리 있지 않다. 인권침해와 송출비리 및 불법체류자를 양산해온 원흉인 산업연수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독자적 법률을 제정해 '취업관리제' 또는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국적·민족·인종·성별에 관계없이 '근로자' 신분을 부여해 부당하게 가해 온 제도적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다. 물론 저개발국에 대한 기술이전을 목적으로 하는 순수한 산업연수제는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이미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월드컵 4강 진입으로, 우리는 평화와 화해와 관용의 정신이 가득한 선진 민주주의 사회, 복지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그러한 국민적 자존심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훼손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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