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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한가한 줄 아나?" 드라마속 인물 설정 현실감 잃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시대를 막론하고 의사·변호사·건축가 등 전문 직종은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한다. 인물을 돋보이게 할 뿐 아니라 그런 직업의 뒷얘기를 드라마 속에 녹이면 내용이 한층 살아나기 때문이다.

기자라는 직업도 종종 드라마에 등장했지만 대부분이 주변인에 머물렀다. 깃 세운 바바리를 입고 바람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식의 '겉멋의 대명사'로 양념 역할 정도에 그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주요 인물의 직업으로 기자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MBC 일일 드라마 '인어 아가씨'는 신문사 기자와 편집국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묘사해 눈길을 끌고 있다.

태양일보 사주의 아들이자 사회부 기자인 이주왕(김성택 분), 그의 약혼녀이자 문화부 방송팀 기자인 은예영(우희진 분), 예영의 아버지이자 문화담당 에디터인 은진섭(박근형 분) 등 극의 중심에 기자들이 있다.

호칭에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든가, 경찰기자 팀장을 '캡(캡틴의 준말)'이라 부르고, 신문 편집 과정을 중간중간 보여주는 등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당초 작가 임성한씨는 드라마 집필 전 모 신문사에서 일정 기간 취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회부 저녁 회식 자리까지 따라가 분위기를 파악했다는 후문이다. 세트 대신 신문사에서 촬영을 하는 것도 현실감을 더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기자는 드라마 속에서 '자유인' 아니면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인어 아가씨' 시청자 게시판에는 "우희진은 기자역에 어울리지 않는다. 기사 쓰기에 바쁜 기자가 그렇게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니나(구미애)" "문화부 기자는 다 그렇게 한가한가요(김경민)"라는 등의 지적이 올라오고 있다. 드라마의 흐름상 이야기를 이끌어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한계지만 좀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한편 MBC 주말극 '그대를 알고부터'에서는 류시원이 스포츠신문 연예부 기자로, 수목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 이동건이 신문사 음악 담당 기자로 등장한다. 훤칠하고 잘생기고 말 잘하고 잘 노는, 한마디로 '킹카'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자로서는 0점 수준이다. 일하는 모습은 가뭄에 콩나듯 보일 뿐 나머지는 온통 사랑과 여자에 목말라 있다.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몸을 던지고, 기사 한 문장을 두고 고민하는 기자의 모습을 드라마 속에서 기대하기란 아직 요원한 분위기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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