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9위 금호그룹… 후계 항로는 '박삼구 체제' 시동 채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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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정구 회장의 별세로 호남기업을 대표하는 금호그룹의 후계구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 서열 9위의 대그룹인 데다 그동안 형제간의 그룹 회장 이양으로 주목돼 왔기 때문이다. 금호 장성지 상무는 "상중(喪中)에 후계구도를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장례후 가족 모임과 사장단 회의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삼구 회장 체제로 갈 듯=그룹 안팎에서는 지난해 2월 박정구 회장이 치료차 미국으로 떠난 이후 동생인 박삼구(57)부회장이 17개월 동안 경영권을 행사해 온 만큼 자연스럽게 박삼구 회장에게 경영권이 이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996년에는 장남인 박성용(71)명예회장이 2남인 박정구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겨줬다.

朴회장은 생전에 "65세가 되면 동생(박삼구)에게 그룹을 맡기겠다"는 의사를 여러차례 임직원에게 흘려왔다. 남매 가운데 4남인 박찬구(54)금호석유화학 사장, 차녀인 박강자(61) 금호문화재단 부이사장을 제외하고 5남인 박종구(44)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 등 다른 사람들은 남매들은 그룹 경영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은 점도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박삼구 부회장은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그동안 난항을 겪었던 금호산업 타이어부문의 지분매각,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매각 등 구조조정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朴부회장은 지난 6월 월드컵 기간 중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계 회동 때는 그룹 총수 자격으로 참석하는 등 그룹의 얼굴로 왕성한 대외활동을 펼쳤다.

올초 그룹 인사에서는 朴부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신훈 금호산업 건설사업부 사장·박찬법 아시아나항공 사장·이원태 금호산업 고속사업부 사장 등이 계열사 경영진에 대거 발탁돼 후계작업이 마무리됐다는 분석이 흘러 나올 정도였다.

朴부회장은 최근 "오는 9월말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해 그룹을 안정시키는 일이 시급하며 (내가) 회장이 되더라도 형제들과 의논하며 경영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운수사업으로서 성장한 그룹=금호는 고 박인천 회장이 46년 광주택시를 모태로 키운 대표적인 호남기업으로, 50년대까지는 광주고속(현 금호고속)등 운수업체로 크게 발돋움했다. 금호가 대기업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60~70년대 금호타이어·금호실업 등 계열사군을 이끌면서부터다.

87년말 민항사업권을 따내 아시아나항공을 만들고 금호쉘화학·금호미쓰이화학 등 석유화학분야 사업의 기틀을 마련, 비약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9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복합화물터미털·금호특송 등 사업다각화를 진행했고 항저우(杭州)등 중국 6개 지역의 고속버스운송사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을 운영하면서 금호는 자금난을 겪기 시작했고, 외환위기 때는 외채부담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금호는 이때 서울 회현동 본사 건물과 중국 내 타이어공장을 매각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 작업을 벌여 32개사였던 계열사를 15개로 대폭 줄이면서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근엔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열병합발전소 등 계열사의 지분과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금호그룹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 규모 약 13조원으로 재계 9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그룹 총매출은 7조7천억원에 달했다.

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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