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키우는 고교생 읽기자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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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청소년을 위한 독서 잡지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던 때가 있었다. 얼추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독서 평설』『디딤돌』『독서광장』『글과 생각』『논술 세대』 등 꽤 여러가지였다. 이들은 대개 대학입시제도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등장했는데, 교양적 성격이 강했던 초창기를 지나서 대입 수능의 언어 영역과 논술 시험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전문적 성격으로 특성화하고, 다시 중·고등학생으로 나누어 수준별로 세분화 하는 등 나름대로 다양하고 의미있게 발전하며 1318 세대의 독서에 한몫 거들 기세였다.

하지만 이들 독서 잡지는 얼마 가지 못하고 아쉽게도 거의 폐간되었다. 청소년 독자들의 눈길을 계속 끄는 데 실패했기 때문인데, 무엇보다 독서 잡지 스스로의 책임이 컸다. 즉, 창간의 정신이나 방향과 달리(또는 걸맞게!) 시험성적 향상을 위한 독서 길라잡이를 자임했으나 그 효용성을 즉각 확인시켜 주지 못하자 급속히 외면받게 된 것이다. 여기에 청소년들의 올곧은 독서교육을 위한 알차고 새로운 기획과 장치, 교육프로그램들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지 못했다는 점도 이런 결말을 재촉했다.

현재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독서 평설』만 해도 창간호 때 참신하게 시도했던 독서 프로그램 체계를 10여년째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1318세대들에게 선뜻 추천하기가 망설여진다. 정보화 시대를 호흡하는 청소년들의 머리와 가슴에 파고드는 훌륭한 독서 잡지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할 때는 언제인가.

이런 현실에서 최근 중·고교 현장에서 시도되는 작은 움직임들이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중고등학교 현장에서 펴내는 각종 '독서 도움 자료'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테면 매달 또는 격월로 발간되는 도서관 회보와 독서 신문들이 재미있는 삽화와 로고·클립아트 등을 직접 만들거나 살짝 따와 책과 함께 생활하도록 북돋우고 있다. 일주일이나 열흘 단위로 짧은 글들과 함께 재미있는 현상 퀴즈와 생각할 문제를 만들고 솔직하고 정겨운 추천사들을 담은 '읽을거리'들이 배포되고 있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독서 도움 자료들이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런 자료들에서 그림책 『마지막 거인』(프랑수아 플라스·디자인하우스), 동화 『오월의 노래』(이원수·창작과비평사), 산문집 『손가락 끝으로 꿈꾸는 우주인』(후쿠시마 사토시·중심), 『내 생애 단 한 번』(장영희·샘터사), 『당신들의 대한민국』(박노자·한겨레신문사) 등을 확인하는 즐거움이라니!

이런 읽기 자료들은 상업적인 이윤 창출과 무관하기에 외관상 볼품없고 간혹 무시되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신속하게 제작되며 학생들의 눈높이 독서 지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를 다시 수준별·영역별·진로별·흥미별 등등 다양하게 특화하는 독서자료 DB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교사들이 흥미있고 알차게 읽을 수 있는 좋은 글들을 부지런히 찾고 자료로 만들어 서로 나누며 논의하는 풍경이야말로 중·고교 현장의 독서 활성화에 가장 큰 힘이 될 것임은 물론이다. 책과 함께 하는 삶, 그렇게 멀기만 한 꿈일까?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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