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80>제102화 고쟁이를란제리로 :29. 신소재 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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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브래지어에 철사를 넣는다구?"

1970년대 브래지어 제품에 철사(와이어)를 넣기 시작했다. 납작한 철사를 U자 모양으로 구부려 브래지어 컵의 아래를 받쳐주도록 했다. 가슴을 천으로만 감싸줬을 때보다 훨씬 힘이 생겼다.

철사는 가슴을 잘 모아주고, 가슴이 쳐지지 않도록 해주는 존재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단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단단하고 차가운 느낌을 줬다. 빨래를 하면 철사가 잘 휘는 것도 문제였다. 굽은 철사를 손으로 펴다보면 브래지어 모양이 흉해지곤 했다. 심지어 철사 끝이 천을 비집고 나오기도 했다.

두께는 1㎜ 안팎, 폭은 2~3㎜에 불과한 쇠붙이를 제대로 다스리는 일이 어려웠다. 철사 끝이 가슴을 압박해 답답하고 아프기까지 하다고 호소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소재 개발에 최선을 다합시다!"

나는 회의 때마다 강조했다. 나 역시 외국에 나가면 세계 유명 브랜드 신제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신소재 찾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혹시 형상기억 합금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외국 출장 중 샘플용 브래지어를 구입하기 위해 들른 한 매장의 점원이 물었다.

"그게 대체 뭡니까?"

"새로 나온 소재인데 이 브래지어에 들어 있습니다."

나는 신소재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자세히 좀 설명해 주시오."

점원은 원래의 형상을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그 형상으로 돌아가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들려줬다. 일정한 온도가 되면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가는 합금. 이 소재를 브래지어에 넣으면 주인의 가슴 모양을 기억해 두었다가 세탁을 해서 다시 착용할 때 그 모양 그대로 돌아간다는 합금. 설명을 들을 수록 신비스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나는 형상기억 합금에 관한 정보를 구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60년대 미국 해군이 잠수함 재료를 개발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신소재였다. 무엇이든 만들어질 때의 모양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서 선진국에서는 이미 여러 제품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꿈의 신소재를 드디어 찾았다."

나는 수소문 끝에 프랑스에서 형상기억 합금을 만드는 회사 '상투르 소프트 와이어'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어 크리스티앙 상투르 사장과 계약해 브래지어용으로 소재를 공급받기로 했다.

이렇게 상투르 와이어를 사용해 만든 제품이 1980년대에 개발한 'U-라인 프러스 브라'였다. 어깨끈을 U자로 만들어 가슴 선을 예쁘게 모아주던 'U라인 브라'에 형상기억 합금을 넣은 신제품이었다.

'기억력'을 가진 쇠붙이가 들어 있는 브래지어가 나왔다고 하자 여성들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딱딱한 철사의 '횡포'에 시달리던 여성들은 똑똑한 합금의 기억력을 차츰 인정하기 시작했다. 압박감이 훨씬 덜어졌다고 기뻐했다. 세탁을 한 뒤 다시 착용할 때 체온이 닿으면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는 습성을 기특해 하는 여성도 늘어났다.

브래지어는 단순한 봉제업의 산물이 아니다. 천을 오려 컵을 만들고 끈을 달아 뚝닥뚝닥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나는 첨단과학의 결정체라고 감히 주장한다.

한 개의 브래지어가 탄생하려면 보통 20가지 이상의 첨단 자재가 들어가야 한다. 봉제 공정도 25~30번 이상 거쳐야 한다. 여성의 살에 가장 먼저 닿는 기능성 속옷이다 보니 그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와이어를 L자로 바꾼 제품이 인기다.가슴을 압박하는 느낌이 훨씬 덜어졌고 착용감도 좋아졌다는 평가다. 운동화 밑창을 만드는 '에어 쿨 메시'라는 소재도 브래지어에 쓰인다.

노출이 심해지면서 브래지어에도 패션이 강조되고 있다.'보여주는 속옷'으로 생각하는 여성도 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추세에 맞춰 제품의 디자인도 수시로 바뀐다. 비비안이 한해에 개발하는 브래지어는 평균 1천5백여 가지나 된다. 그 중에서 4백 가지 정도만 시중에 나오고 나머지는 빛을 보지 못한다.

정리=이종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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