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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 재앙 국가 차원 지원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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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발생한 초강력 지진에 의한 해일로 남아시아가 미증유의 자연재해를 겪고 있다. 환태평양 화산대에 인접한 이 지역은 히말라야 화산대의 간접 영향권이며, 특히 해양부 동남아는 화산폭발로 생성됐기 때문에 화산 폭발과 지진이 잦다. 그중에서도 세계 최대 도서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100개 이상의 화산이 활동하고 있다.

수만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남아시아는 현재 경제분야에 대한 손실을 따지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만큼 국가 비상사태를 맞고 있다. 동남아를 선린으로, 그리고 상생 파트너로 삼고 있는 우리로서는 서둘러 이들에게 우리가 인류애가 넘치는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이웃임을 알려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동북아의 두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이 동남아에 어떻게 기여했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동남아 국가들의 우려와는 크게 다르게 위안화 절하를 단행하지 않음으로써 빈약한 동남아 경제가 회생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줬다. 만약 당시 중국이 위안화를 절하했다면 중국 경제는 뜻밖의 호황을 맞고 경제구조상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던 동남아 제조업의 경쟁력은 급격히 추락했을 것이다. 이러한 위급한 시기에 중국이 보여준 우정어린 도움은 동남아 국가들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국에 가지고 있던 뿌리 깊은 불신과 경계심을 털어내고 믿음을 갖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 협력체를 본 궤도에 올려놓고, 아세안이 기꺼이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밑바탕이 됐다.

동남아 국가들은 일본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동남아 경제의 40%가 일본 경제와 유착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은 국가 경제의 절반 이상이 일본 경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경계심을 완화하고자 일본은 동남아 실정에 맞는 직접적인 무상원조로 경제지원 체제를 크게 수정.보완했다. 또 캄보디아 전후 복구와 자유 총선에 의한 독립 공여 프로젝트를 일본이 중심이 돼 수행했으며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등지의 인류문화유적지 복원도 일본이 도맡아 해내고 있다.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대폭발 때도 일본 구조단이 제일 먼저 피해 현장에 도착했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일본을 기피하는 동남아 국가의 관심을 일본 쪽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대동아공영권 주장과 독립을 미끼로 동남아를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 삼았던 일본이 아닌가. 이러한 일본에 대해 동남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것은 바로 이러한 노력이 밑거름이 됐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방의 도움을 받아 왔다. 이라크 파병의 논리도 우리도 이제 먹고 살 만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됐으니 국제 분쟁을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음을 한 가지 이유로 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만큼 이웃 국가를 도울 것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우리가 먹고 남는 것으로 돕는다는 것은 '돕는 의의'가 반감된다. 우리가 해외에 공여하는 각종 유 무상 원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렇게 인색한 원조의 손은 국제사회에 내놓기가 부끄럽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우리의 위상과 달라진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알릴 필요가 있다. 더욱이 최근 아세안대학연합(AUN)은 동남아 지역 차원의 한국학센터를 태국에 설립하기로 했다. 한국의 경제 발전과 한국 문화와 한민족의 우수성,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 등이 우선적인 연구 과제로 상정됐다고 한다. 우리가 동남아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가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정부 차원에서만 나설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와 현지 기업들이 함께 나서서 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

양승윤 한국외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