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희 강원교육감, 교과부가 보낸 공문 ‘변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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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학업성취도 평가 관련 방침을 밝히고 있는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춘천=연합뉴스]

13~14일 치러지는 학업성취도 평가와 관련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일선 초·중·고에 전파하라며 보낸 공문을 친전교조 성향의 민병희 교육감이 지휘하는 강원도교육청이 임의로 내용을 삭제하고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사무가 일선 교육감의 자의적인 행동에 따라 차질을 빚는 난맥상이 빚어지고 있다.

본지가 12일 강원도교육청이 교과부로부터 받아 일선 학교에 내려보낸 ‘학업성취도 평가 미참여 학생에 대한 관리 안내’라는 제목의 공문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다.

이 공문은 교과부가 1일 일선 학교에 전파하라며 전국 교육청에 보낸 것이다. 교과부는 공문에서 학생들이 성실하게 평가에 응하도록 관리감독해 달라는 내용과 함께 학교장 승인 없이 체험학습 등에 참가해 평가를 거부하면 무단결석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학교장 등이 체험학습 등을 승인한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징계 등 제재조치’라는 내용을 별표(※)로 넣었다. 또 평가 당일 등교했으나 시험을 거부하는 경우 무단결과 처리토록 했다. 하지만 강원도교육청은 9일자로 일선 학교에 보낸 공문에서 체험학습 승인 학교장을 제재한다는 내용을 삭제했다. 또 ‘무단결과 처리’ 항목 대신 ‘평가 미응시 학생에게 대체프로그램 제공 등 적절한 조치’라고 바꿔서 보냈다.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장 징계 부분은 이미 보낸 원본에도 있었기 때문”이라며 "세번째 항목의 대체 프로그램 부분은 교육청 입장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전엔 시키는 대로 했지만 직선 교육감은 융통성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민 교육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교과부 공문에는 학교에 나와서 체험학습하는 것도 결석 처리토록 했으나 이는 학교장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학교장 판단에 따라 결석처리하지 않도록 공문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정부의 공문 내용을 마음대로 바꿔 학교에 하달하는 행위는 유사 이래 찾아보기 힘든 경우”라며 “강원도교육청에 시정 공문을 보냈으며 법적 조치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업성취도 평가와 관련해 보낸 공문을 강원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전달하면서 임의로 내용을 삭제하고 바꿨다. ‘학교장 등이 체험학습 등을 승인한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징계 등 제재조치’(사진 속 ①) 항목이 삭제됐다. 또 ‘평가 당일 등교했으나 시험 거부한 경우는 무단결과 처리’(사진 속 ②) 항목은 ‘미응시 학생에게 대체 프로그램 제공 등 적절한 조치’로 바꿨다. 교과부는 “공문 내용을 맘대로 바꾸는 것은 전례가 없다”며 강경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곽노현 서울교육감 "대체수업 인정”=학업성취도 평가와 관련해 입장 표명을 유보해 온 친전교조 성향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성취도 평가를 거부하는 학생을 ‘무단결석’ 대신 ‘기타결석’으로 처리하라는 공문을 일선 학교에 보냈다. 무단결석은 고교 진학 시 무단결석 1일당 1점씩 감점되는 불이익을 받지만 기타결석은 결석에 포함되지 않는다. 미응시 학생을 위한 대체 프로그램도 마련토록 했다.

학업성취도 평가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던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뒤늦게 교과부의 공문을 수정 없이 그대로 일선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교과부 공문을 그대로 보낸 것일 뿐”이라며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자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친전교조 성향의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학업성취도 평가 불참 학생에 대해 무단결석 처리하고, 등교 후 시험을 치르지 않을 경우 무단결과 처리토록 했다.

교과부 양성광 교육정보정책관은 “대체수업 운영 자체가 위법”이라며 “학교에 출석한 뒤 시험을 거부하면 모두 무단결과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과 처리를 하지 않는 경우 시정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정명령이나 교사 징계 요구 수위 등은 일선 교육감이 결정하도록 돼 있어 교과부 대처에도 한계가 있다.

김성탁·이원진 기자, 춘천=이찬호 기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초·중·고교생들이 교육과정 단계별로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국가가 매년 치르는 시험. ‘초중등교육법’에 의거해 매년 초6, 중3, 고2 학년이 시험을 보며 2008년부터 평가 대상이 표집에서 전수로 바뀌었다. 올해 시험 결과는 11월 학교별로 인터넷 사이트인 ‘학교알리미’에 공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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