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지도자 '히딩크팀'서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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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왜 히딩크 감독이었나.

"허정무 감독이 물러난 후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기로 기술위원회에서 결정했다. 후보는 다섯 명 정도로 압축됐다. 그런데 시간이 촉박했다. A매치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새 감독에게 한·일 정기전(2000년 12월 20일)을 보여줘야 했다. 일단 접촉할 사람을 정해 가국장을 유럽으로 보냈다. 후보들에게 번호를 붙였다. 1번이 에메 자케 전 프랑스대표팀 감독이었고, 2번이 히딩크 감독이었다. 3번이 1996년 올림픽 때 나이지리아를 우승시킨 본프레레 감독, 4번이 프랑스월드컵 때 크로아티아를 이끌었던 블라제오비치, 5번이 밀루티노비치였다. 사실 3, 4, 5는 내키지 않는 후보였다. 1, 2번이 모두 안되면 기술위원회를 다시 열 생각이었다. 자케 감독은 즉각 거절했다. 히딩크 감독은 당시 몇 곳에서 감독직을 제안받고 있었다. 가국장이 어떻게 설득했는지 모르지만 애를 많이 썼다. 당시 가국장은 '다리를 붙들어 매서라도 데려올테니 걱정말라'며 떠났다."

-히딩크 감독을 고른 건 네덜란드 축구를 생각했기 때문인가.

"1순위가 자케 감독이었다. 그는 프랑스 출신 아닌가. 단지 외국인 감독을 영입할 때 우선순위를 서유럽 출신 감독에 두고 있었다. 일단 데려온 지도자의 노하우를 체계화시키기에는 서유럽 지도자들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4강 진출을 이뤘다. 예상했던 결과인가.

"목표는 분명 16강 진출이었다. 그러나 대회 직전 히딩크 감독과 이런 얘기를 한 일이 있다. '불가능하겠지만 꿈은 꿀 수 있지 않느냐. 저렇게 훌륭한 상암구장(서울 월드컵경기장)을 지어놓고 거기를 밟지 못하면 얼마나 섭섭하겠느냐. 꼭 상암에서 경기 한번 하자(이 이야기는 4강에 가자는 얘기다). 결승에 가면 좋지만 못가면 대구에서 마무리짓는 것도 괜찮다.' 그런데 정말 꿈이 이뤄졌다."

(한국이 상암경기장에서 4강전을 치를 당시 붉은 악마의 카드섹션이 우연히도 '꿈★은 이루어진다'였다.)

-가장 기뻤던 경기와 힘들었던 경기는.

"아무래도 첫 승을 거둔 폴란드전이 가장 기쁜 경기였다. 포르투갈전이 가장 힘든 경기였다. 당시 포르투갈에 지고, 미국이 폴란드에 이기면 우리는 탈락이었다. 전반 10분쯤 됐는데 대전에 간 기술위원이 전화를 했다. 응원소리 때문에 잘 안들리는데 2-0이라고 했다.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기술위원이 폴란드가 두 골을 넣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된거야'라고 소리친 기억이 난다. 이탈리아전도 힘든 경기였지만 16강에 진출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포르투갈전보다 부담은 덜했다. 아쉽게 패한 독일·터키의 경우 우리가 조별리그에서 만났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우리팀의 사이클은 조별리그에 맞춰져 있었다."

-히딩크 감독에게 위기였던 체코 평가전 직후와 북중미 골드컵 당시를 회상하면.

"체코전이 끝난 뒤 히딩크 감독이 귀국해서 할 일이 없었다. 굳이 귀국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귀국이 늦다고 비난이 일었다. 나는 비난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려 굳이 애쓰지 않았다. 결과가 좋으니 그런 것들이 묻혀 버렸지 결과가 나빴다면 또다시 비난의 실마리가 됐을 것이다. 골드컵 때도 같은 맥락이다. 난 트레이닝과 운동생리학을 전공했다. 월드컵을 목표로 히딩크 감독이 세운 일정은 내가 공부했던 것 그대로였다. 당시 우리 목표가 골드컵 우승이었다면 웨이트 트레이닝은 없었을 것이다. 월드컵이 시작된 뒤 웨이트 트레이닝했다는 소리를 들어봤나. 훈련은 어느 시점에 무게를 맞추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히딩크 감독은 스포츠과학을 잘아는 사람이다.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히딩크 감독 편드는 소리로밖엔 안 비춰졌을 것이다. 우리는 결과로 책임져야 했다. 결과는 예상할 수 없지만 내가 배운 스포츠과학 이론에 맞았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을 계속 믿고 지원했다."

-여자친구 문제도 비난을 받았는데.

"내가 히딩크 감독과 유일하게 의견충돌을 보였던 문제다. 나는 히딩크 감독에게 '여자친구가 경기를 보러와 응원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훈련캠프는 안된다. 한국은 월드컵을 전쟁처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졸병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장군은 천막 안에 있는 것처럼 비친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이 가까워져도 내가 이럴 것으로 보이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그 다음부터는 오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의 경우 당장은 우리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아도 다 정리한 뒤 결국은 수용한다. 합리적이었다."

-앞으로 히딩크 감독과는 어떤 식으로 연결할 것인가.

"며칠간 히딩크 감독과 나, 그리고 가국장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히딩크 감독이 남는 것이 축구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붙잡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히딩크 감독의 나이와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게 뭘까 궁리했고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유럽으로 돌아간다는 히딩크 감독의 입장은 확고했다. 물론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일단 히딩크 감독과의 끈을 만들 생각이다. 히딩크 감독에게 기술고문직을 주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일단 히딩크 감독과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얘기했고 합의를 본 부분은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는 팀과 우리 축구협회가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이 맡을 프로팀과 연계해 유소년 프로그램, 지도자 연수, 선수 개별훈련을 진행하는 것이 그 프로젝트에 포함된다. 히딩크 감독도 이 제안에 만족했다."

-이위원장의 거취는 어떻게 되나. 또 차기 감독은.

"이제 그만두고 싶다. 정몽준 회장의 생각은 아직 모른다. 하지만 결정은 내가 한다. 뒷마무리까지만 내가 할 일이다. 학교(세종대학교)로도 돌아가지 않고 6개월쯤 쉴 생각이다. 그간 공부할 시간이 없었는데 해외로 나가 축구공부를 하고 싶다."

(정회장은 이용수 위원장의 거취에 대해 "능력있는 사람은 계속 일을 해야 한다"며 유임시킬 뜻을 비춘 바 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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