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근대 건조물 보존 나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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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량 2동 옛 백제병원 건물. 1920년에 세워진 부산 최초의 종합병원이다. [송봉근 기자]

부산역 맞은 편 동구 초량 2동 주민센터로 가는 골목길로 접어들면 4층짜리 붉은색 벽돌 건물이 나타난다. 창문 위쪽을 벽돌로 정교하게 쌓아 아치형으로 만든 이 건물은 1920년에 세워진 부산 최초의 종합병원인 백제병원이 있던 곳이다. 전성기 때는 일본과 독일 의사가 하루 수백 명의 환자를 돌보고, 40개 침상에 간호사 30여 명이 근무했다고 한다. 1932년 병원이 문을 닫은 뒤 일본군 장교숙소로 사용되다 해방 뒤 치안대 사무소, 중국영사관, 예식장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부동산 중개소, 분식집이 입주한 일반 상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부산에는 부산항 개항과 함께 외국 문물이 들어오면서 세워진 근대 건조물이 많다.

부산시가 이러한 근대 건조물 보존에 나선다. 근대 건조물 보호에 관한 조례를 9일 공포하고 근대 건조물 보호위원회를 구성해 보존대상 건물을 선정하기로 했다. 19세기 개항기부터 한국전쟁 전후에 세워진 건물 가운데 역사성과 예술성, 건축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 보존대상이다. 문화재청이 지정해 별도 관리하고 있는 부산지역 근대문화재 8개는 부산시 보존 대상에서 제외된다.

부산시 조사결과 보존가치가 있는 근대 건조물은 174개(건축물 110, 다리와 수문 64)로 나타났다. 부산시는 이 가운데 보호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근대 건조물로 지정하면 건물을 사들이거나 수리비를 지원해 보존하기로 했다.

부산시가 근대 건조물 보존에 나선 것은 조선인이 최초로 세워 108년 역사를 가진 근대식 물류창고였던 남선창고가 2008년 11월 철거된 뒤 근대 건조물에 대한 보존 여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우선 역사성 가치가 있는 건축물 10개부터 보존할 방침이다. <표 참조>


이 가운데 부산 최초의 공동주택인 중구 남포동 청풍장 아파트와 소화장 아파트가 눈에 띈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 초에 세워져 조선도시경영회사의 관사로 사용된 건물이다. 지금도 40여 가구가 입주해 살고 있으나 건물이 낡아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동래구 온천동 금정산 자락에 있는 동래별장도 보존대상이다. 1920년대 초 일본인이 지은 건물로 해방 후 미군정청으로 사용되었다가 6·25 이후 지금의 이름이 붙어졌다. 지금은 한식당과 야외결혼식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아대 김기수(건축학) 교수는 “근대사의 부침을 겪은 부산에는 근대에 지어진 건조물이 많지만 정부가 지정하는 근대 등록 문화재에 포함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 근대 건조물을 체계적으로 보존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글=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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