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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자금 손실 국민부담 1인 185만원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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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한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손실 규모를 추정하고, 그 상환대책을 내놨다. 대책의 핵심은 87조원으로 예상되는 손실금액을 금융기관과 국민이 분담해 갚아나가자는 것이다.

그동안 회수할 수 없는 돈이 얼마이고,이 돈을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가 논란이 돼왔다는 점에서 일단 대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평가할 만한 일이다. 일본의 경우 40조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아직 상환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손실 추정액과 상환방안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예컨대 정부가 추정한 손실 규모에는 앞으로 부담할 이자가 포함되지 않아 정확한 손실액수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민간 연구기관들의 지적이다. 또 정부의 계획대로 공적자금이 회수될지도 미지수다. 비과세 저축을 줄이고 경유·등유 등 에너지세율을 올리는 등 국민의 부담이 지나치게 늘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기관은 금융권 부담이 너무 크다는 입장이고, 기획예산처는 재정부담이 늘면 균형재정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불만이다. 결국 다음달 정부안이 최종 확정되고, 가을 정기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까지 공적자금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손실 규모와 회수율 논란=정부는 손실 규모를 69조원이라고 발표했다. 재정에서 이자로 나간 18조원을 제외한 수치다. 공자위 관계자는 "앞으로 부담할 손실 규모만 추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나간 18조원도 찾을 수 없는 돈이므로 전체 손실 규모에 포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경우 손실 규모는 87조원으로 늘어난다.

공적자금 규모를 얼마로 잡느냐에 따라 회수율에도 큰 차이가 난다. 공적자금으로 투입한 뒤 회수했다가 재투입한 돈을 모두 합치면 1백56조원이다. 정부는 이를 기준으로 87조원이 회수돼 회수율이 56%라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연구위원은 "회수율은 회수한 후 재투입한 돈을 빼고 순수하게 공적자금으로 조성한 1백4조원을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며 "이 경우 회수율이 30%대"라고 주장했다. 성균관대 김준영 교수는 회수율을 40%대로 추정했다. 정부의 손실 규모엔 3월 말 현재 갚아야 할 돈만이 포함됐고 앞으로 낼 이자가 빠졌다. 25년간 갚아나갈 69조원에 덧붙는 이자만 60조원을 넘는다는 게 민간 연구기관들의 분석이다. 민간 연구기관들은 전체 손실 규모를 따질 때는 이자 부담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45조원은 회수할 수 있나=정부는 45조원을 추가로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지만 여기에도 몇가지 의문이 있다.

예컨대 정부가 금융기관 지분을 매각해 회수한다고 본 13조~18조원은 해당 지분을 1백% 매각할 수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계획한 2004년까지 모두 매각할 수 있을지, 금융기관별 수익가치를 기준으로 잡은 매각가격대로 주가가 올라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더욱이 정부가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기 위해 국책은행에 현물출자한 10조원까지 회수액에 포함시킨 것은 회수액을 부풀리기 위한 게 아니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늘어나는 금융기관 부담=금융기관들은 내년부터 25년간 예금보험공사에 내는 보험료를 지금보다 0.1%포인트씩 더 내야 한다. 은행은 내년에 5천억원 정도를 더 내는 등 25년간 9조4천억원을 추가 부담한다. 보험사는 6조7천억원, 상호저축은행은 3조5천억원을 각각 더 낸다.

재경부 관계자는 "지난해 은행 이익이 5조3천억원이었고, 그 10% 정도인 5천억원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쪽 얘기는 딴판이다. "예보료가 늘면 이익과 배당이 줄어 주가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주주들이 반발할 것"이라며 "민영화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우량 은행들은 파산할 가능성이 작은 만큼 보험료율을 차등화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은 국민 부담=공적자금 손실분을 금융기관이 나눠가지든 재정에서 떠안든 간에 최종적으론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국민 1인당 부담액은 1백85만원꼴이다. 금융기관들은 예금보험료가 올라가면 예금금리를 내리거나 대출금리를 올리는 식으로 부담을 고객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

재정 부담은 직접적인 국민 부담이다. 적자재정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세목(稅目)을 새로 만들지 않는 대신 각종 조세감면을 줄여 세금을 더 걷기로 했다. 각종 비과세 저축과 기업 투자세액 공제를 줄이고 에너지 세율을 인상한다. 정부의 지출도 빡빡해진다. 그만큼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현곤·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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