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음악 가족’ 왜 많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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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호 05면

희안한 한 주였습니다. 1980년대를 휘어잡았던 천재 소녀 미도리의 동생, 고토 류를 인터뷰했는데요, 그도 일본에서 잘나가는 바이올린 연주자입니다. 그 부모가 모두 바이올리니스트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그 며칠 후엔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지그스발트 쿠이켄이라는 연주자였는데요, 17세기까지 쓰인 악기 ‘비올라 다 스팔라’로 그 시대의 고(古)음악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쿠이켄가(家)는 고음악 집안입니다. 지그스발트는 동생이 둘입니다. 빌란트 쿠이켄, 바르톨트 쿠이켄, 즉 ‘쿠이켄 삼형제’는 고음악계를 평정하다시피 했습니다.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음악회 다음 날엔 바이올리니스트 티보 바가의 아들을 만났습니다. 티보 바가는 현악 명문 헝가리에서도 특별 대우를 받는 명연주자입니다. 아들 길버트는 아버지를 사사하며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지금은 세계를 무대로 지휘를 합니다. 이날 인터뷰에 동석한 협연자는 바이올린 연주자인 강주미씨였습니다. 그 아버지는 성악가 강병운씨입니다. 독일의 자존심인 바이로이트 음악축제에 일찍이 진출한 한국인이죠. 강주미씨의 어머니는 소프라노고 언니ㆍ오빠는 피아노ㆍ첼로 연주자입니다.

그리고 지휘자 정명훈씨는 연주가 없는데도 한국에 들렀습니다. 아들 민씨가 오페라 지휘로 공식 데뷔하기 때문입니다. 정명훈씨의 셋째 아들인 민씨는 더블베이스·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해 아버지처럼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아들이 데뷔할 공연장의 음향을 꼼꼼히 체크하고, 리허설을 들어주면서도 “앞으로 아주 잘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 모르죠”라며 말끝을 흐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꼭 요새 사랑받는 차범근ㆍ두리 부자 같았습니다.

한 주 동안 만난 음악인 거의 전부가 ‘음악 혈통’을 자랑한 셈이죠. 그렇다 보니 의문이 생기더군요. 음악적 재능은 정말 유전될까?영국 신경정신학자인 올리버 색스는 『뮤지코필리아』에서 “언어는 모든 가정에서 사용하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음악이 내내 흐르는 집에서 자란 아이의 음악적 재능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한 고찰입니다. 그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진 않은 채 “뇌의 해부학적 연구에 따르면 음악 교육을 시작한 나이와 연습량, 훈련 강도가 뇌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를 이어 물려받은 재능’이라는 말에는 음악에 대한 환상이 스며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에 노출되는 빈도, 조기 훈련 등이 음악 가족을 만드는 강한 힘일 것입니다. 연주자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고음악계에 가족 연주자가 많은 사실도 주목해야 합니다. 17세기의 악기를 가족이 연주하지 않았다면, 쉽게 접할 수 있을까요? 비올라 다 감바라는 옛 악기의 거장인 조르디 사발과 그의 아내ㆍ딸ㆍ아들도 유명한 음악 가족이죠. 또 J.S. 바흐의 아이 10명 중 6명이 음악가로 자랐습니다. 이들을 기른 게 ‘음악 DNA’뿐일까요? 저는 아버지의 훈련, 전례의 힘이 더 크다는 쪽에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A 환경과 조기훈련 영향 크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클래식을 담당하는 김호정 기자의 e-메일로 궁금한 것을 보내주세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 서울대 기악과(피아노 전공)를 졸업하고 입사, 서울시청ㆍ경찰서 출입기자를 거쳐 문화부에서 음악을 맡았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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