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하모니아 코리아’ 창단 연주회 지휘할 길버트 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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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한 길버트 바가는 손가락 부상 이후 지휘자로 진로를 바꿨다.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하모니아 코리아 제공]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은 의사소통에 능숙합니다. 지휘자가 작은 힌트만 줘도 빨리 알아차리네요.”

유럽의 지휘자 길버트 바가(58)는 필하모니아 코리아 창단 지휘를 사흘 앞둔 7일, 단원들 칭찬에 바빴다. 필하모니아 코리아는 20~30대 젊은 연주자들이 모여 만드는 오케스트라로, 지휘자 바가를 초청해 1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창단 연주회를 연다.

바가는 1980년대 이후 슈투트가르트 실내악단, 바스크 심포니 등의 음악감독을 지낸 노련한 지휘자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라이벌이었던 역사적 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1912~96)를 사사한 경력이다. “요즘 젊은 연주자들이 첼리비다케와 연주한다면 새로운 세계를 만났을 거에요. 그는 한 번의 연주를 위해 20번씩 리허설을 하곤 했어요.”

바가는 20대 초반에 첼리비다케의 명성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첼리비다케는 바이올린 소리가 이 부분에서 작아지면 플루트가 그 음악을 이어받고, 그 다음에는 첼로가 말을 걸어온다는 식의 스토리를 하나하나 설명했죠.” 첼리비다케가 덩치 큰 교향악단의 움직임을 세세히 조율하는 과정을 지켜본 그는 ‘오케스트라로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헝가리의 ‘국민 바이올리니스트’인 티보 바가(1921~2003)의 아들이다. 네 살부터 자연스럽게 바이올린을 잡았다. “스물두 살 되던 해에 갑자기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마비가 왔어요. 의사들도 원인을 모른다고 했죠.” 다른 악기와 대화하는 실내악 연주자를 꿈꾸던 그에게 큰 시련이었다.

첼리비다케는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 바가에게 지휘자의 꿈을 심어준 것이다. “당시 첼리비다케의 연주가 열리는 곳에는 항상 젊은 음악도들이 몰려들었어요. 리허설을 지켜보고, 대기실까지 찾아가 질문을 퍼붓곤 했죠. 첼리비다케처럼 독특한 음악적 세계가 있으면서 화합도 이끌어내는 지휘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는 이번 연주를 통해 “한국 연주자들이 자신의 음악에 확신을 가지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2001년 이후 매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았습니다. 한국 참가자들의 기량에 깊은 인상을 받았죠. 그 기량을 최대한 빛낼 수 있는 음악적 조언을 해주고 싶어요.”

바가는 필하모니아 코리아와 함께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을,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인 클라라 주미 강(23)과 함께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한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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