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0년 봉사인생' 펼치는 '대머리 총각'부른 김상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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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상으로 대접받고 살아왔어요. 학사가수라는 것 때문에도 더 대접받았죠. 최희준 선배가 고생하면서 닦아놓은 길을 저는 평탄하게 지나간 거에요. 가수가 된 과정도 그랬죠. '노란 쌰스'도 몰랐는데 선발대회에서 1등이 됐으니. "

▶ 제11회 대한민국예술상 대상을 받는 가수 김상희씨. 데뷔 이래 변함없는 머리모양이 여전히 소녀같지만, 실은 손주 둘을 둔 할머니다.

제11회 대한민국예술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돼 28일 문화훈장을 받는 가수 김상희(61)씨는 봉사활동에 열심인 이유를 이렇게 우회적으로 답했다. '대머리 총각''즐거운 아리랑''경상도 총각''울산 큰애기'등 숱한 히트곡을 내놓은 그는 올 한 해도 전국 각지의 복지시설을 열댓번쯤 찾았다고 한다.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연예인봉사단체'한마음회'의 동료들과 함께다. "저희는 요즘같은 때는 안해요.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5월도 그렇고. 공연이라기 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노는 거죠. 그 새 저희 연예인들 자체도 나이를 먹었고. 남들이 안찾는 무허가 시설 같은 데를 많이 갑니다. 그럴 때는 반주는 전자올갠 하나로 하고, 좁은 방에 비집고 들어가서 하죠. 돌아올 때는 다들 울어요. 그늘진 곳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활동을 한 것도 벌써 30년 남짓. 1970년대초 새로 생긴 저소득층을 위한 병원 앞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땡볕에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을 위해 공연을 한 것이 출발이라고 한다. 한번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공연요청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설명이다. 4년전부터는 중소기업인들이 주축이 된 후원회도 생겨났다. "전부터도 하겠다는 분들이 있었는데, 혹시라도 저희가 휘둘리게 될까봐 안하려고 했어요. 연예인이라는게 별일 아닌 일도 이상한 소문이 나기 쉽잖아요. 이번 후원회분들께도 처음부터 그런 부분을 하도 강조하니까 좀 놀라시더군요."부드럽고 나직한 말투였지만, 만나는 내내 그의 은근한 고집이 엿보였다.

글머리에 인용한대로 그의 봉사활동은 팬들을 비롯, 데뷔 이래 받은 '대접'에 대한 보답인 셈이다. 전교 1,2등을 다투며 학생회장도 하던 '모범생'은 우연한 기회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가수가 됐다. " KBS 전속가수와 합창단을 함께 모집했어요. 이제야 처음 말씀드리지만 합창단 원서 내는 창구인줄 알고 서류를 낸 데가 전속가수였어요. 학교에서 합창단을 했는데, 가요는 하나도 몰랐어요. 라디오가 안방에 있던 시절이에요. 저희 집은 텔레비전도 있었지만, 전축이나 그런걸 어른들이 아닌 우리가 켜서 듣는다는 건 상상을 할 수 없었죠. 옷도 그냥 교복바지 위에 엄마 반코트를 입고 가서 외국곡을 불렀어요. "당시 고려대 법대에 합격한 여고생 신분이었으니 정확히는 '학사 예정 가수'였지만, 10대 예비스타의 탄생은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 때 아르바이트 용돈을 친구들 중에 제일 많이 벌었죠. 준공무원처럼 매달 꼬박꼬박 받는 돈이 가정교사 하는 아이들의 서너배는 됐던 것 같아요. 월급받는 날이면 빵집에 모아놓고 실컷 사줬죠."

요즘과 달리 당시의 방송국 관계자들은 내일 수업이 있냐 없냐를 먼저 물어가면서 스케쥴을 조정해줬다고 한다. 딸이 판검사가 되기를 바랬던 부모의 뜻을 거스른 것을 제외하면 대학졸업 후 그의 가수생활을 순탄하게 이어졌다. 만나기도 어렵다는 당대의 유명작곡가들이 김씨에게는 선뜻 곡을 주었고, 부르는 족족 히트가 됐다. 방송 진행자로도 자리를 잡았다. 기성가수와 신인이 연이어 출연해서 신인가수에서 평을 해주는 TV프로그램에 섭외가 들어온 것인데, 당시로서는 여성진행자가 거의 처음이었다고 했다.

"담당 PD가 잘 안되면 사표를 쓰겠다고 방송국 간부들을 설득했어요. 지금도 화장을 잘 못하지만, 화장안한 맨얼굴에 입던 옷 입고 나가 진행을 했죠. "그 때의 PD가 나중에 남편(유훈근 동해펄프 대표이사)이 됐고, 김씨는 이후 30여년을 거의 쉼없이 방송진행자로 활동하게 된다. 올해초 목디스크 진단을 받아 쉬기 직전까지도 2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을 두 개나 맡았었다.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하루 여덟시간이에요. 가수라기 보다 월급장이로 살아온 셈이죠. "

화려한 스타보다 성실한 '월급장이'를 자처하는 그는 수상소감을 묻자 "어른노릇 하라는 뜻인 것 같다"면서 "고맙습니다,라고 말씀 드릴 밖에"라고 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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