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19>제2부 薔薇戰爭제4장 捲土重來:화살이 바위 덩어리에 꽂혔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화살을 쏘아 붉은 관을 쓰고 있는 자신의 딸을 맞춰 거꾸러뜨리는 김양의 태도에 모든 병사들은 아연실색하였다. 그러나 대장군 김양의 결연한 의지는 곧 전 군사들에게 불굴의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승리를 위해서는 딸의 목숨마저 끊어버리겠다는 김양의 단호한 태도에 군사들은 일제히 총공격을 단행하였다. 순식간에 성은 함락되고 김민주는 성을 도망쳐 나와 인근에 있는 평산에 숨어있었으나 곧 낙금이 이끄는 군사들에 체포, 살해되었다.

이로써 김양이 이끄는 5천명의 결사대는 단 한번의 공격으로 만명에 이르는 김민주의 관군을 단숨에 초토화시켜버린 것이었다.

이때의 기록이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장군 낙금·이순행이 기병 3천명으로 적진 군중으로 돌격해 들어가 거의 다 살상하였다."

승리를 거둔 동평군은 성안을 뒤져 김양이 죽인 덕생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덕생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화살이 명중되어 그 자리에서 거꾸러진 덕생의 시신은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병사 하나가 성루에서 뜻하지 않은 물건 하나를 찾아냈는데, 그것은 밀짚으로 만든 인형이었다. 멀리서 보면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실제로 옷을 입히고 붉은 관까지 씌운 실물대의 허수아비였던 것이었다.

허수아비 가슴의 정중앙을 화살이 꿰뚫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가슴을 꿰뚫고 있는 화살은 김양이 쏜 명적이었던 것이었다.

김양은 주로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명적과 금빛 꿩털로 만든 깃을 단 화살을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그것이 김양이 쏜 화살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김민주는 실제로 김양의 딸 덕생을 인질로 잡아다 김양을 협박하려 한 것이 아니라 허수아비로 김양의 사기를 꺾으려는 고도의 심리전을 썼던 것이었다.

병귀선성후실(兵貴先聲後實).

옛말에 이르기를 싸움에 있어서는 처음에 적에게 공갈을 함으로써 싸우지 않고 이겨야 하며, 만부득이한 경우에만 무력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뜻으로, 그러니까 김민주는 김양의 기를 꺾기 위해서 위계(僞計)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참으로 경하하오, 대장군. 대장군이 쏜 화살이 바위 덩어리에 꽂혔소."

김우징이 가슴에 화살이 명중한 허수아비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대장군이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히지 아니하였더라면 우리는 이처럼 큰 승리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오."

김우징의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힌다'는 말은 '중석몰촉(中石沒鏃)'이란 고사에서 나온 성어로 전한시대 때 활약한 이광(廣)이란 장수에게서 비롯된 말이었다. 그는 특히 궁술과 기마술에 뛰어난 장수였는데, 흉노와의 싸움에서 늘 이겼으므로 '상승장군(常勝將軍)'이라고 불리던 영웅이었다.

어느 날 그는 저물녘에 들판을 지나다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를 발견했다. 그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활을 힘껏 당겨 쏘았다. 화살은 분명 명중했으나 웬일인지 호랑이는 화살이 박힌 채로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상히 여긴 그가 다가가 보니 호랑이인줄 알았던 것이 큰 바위 덩어리였던 것이다. 그 바위 덩어리에 힘껏 쏜 화살이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화살이 바위 덩어리에 꽂히다니."

그는 제자리에 돌아와서 다시 활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화살은 돌에 맞는 순간 튀어 올랐다. 먼저 쏜 화살은 호랑이를 죽여야겠다고 온정신을 집중하여 쏘았기 때문에 돌에 박힌 것이고, 뒤의 화살은 이미 호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쏘았기 때문에 그만큼의 괴력이 발휘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부터 '중석몰촉', 즉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힘'이란 뜻은 온정신을 집중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면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이 되었던 것이다.

김우징이 김양을 치하하면서 '대장군이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혔소'라고 말하였던 것은 바로 그런 뜻이었던 것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